본 마음을 느낀다는 것
상담 및 심리치료의 장면에서, 자주 사용되어지는 말이 있다.
‘‘본 마음이 무엇인가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요?”
이러한 물음은 상당히 의미 있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꼭 상담 장면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꼭 한번쯤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말이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모르면, 자꾸만 외부상황에 대한 원망과 야속함이 올라오고, 그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싶어진다. 특히, 함께 오래 산 부부사이에서나 부모-자녀관계에서도, 스스로의 본 마음을 포착하지 못하면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혼란스러워지고 멍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 건강한 대처능력을 상실할 때도 있다. 그러다보면, 그 갈등의 탓을 상대방에게 돌리게 되고, 상대방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삐진 마음이 생길 때도 많다. 조금 심하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데,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심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와같이 우리는 스스로의 본마음을 잘 느껴서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 외부대상에 대하여 이런저런 감정이 올라오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때, 우리는 표면적인 감정만을 드러내고, 상대방 탓을 돌리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이런저런 말로 상대방의 잘못을 명백하게 지적하여 비난을 하고 책임을 전가시킨다.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진짜 마음을 전혀 자각하지도 못한 채, 표면적인 분노나 속상함 등의 감정만 상대방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상호작용은 상대방은 상대방대로 인정할 수 없게 만들고, 스스로는 생각하면 할수록 어떤 문제가 풀리지 않으므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본 마음’이라는 말 조차도 들어보지 못한 채, 그저 상대방을 향해서 퍼붓는 질타는 서로에게 엄청난 상처밖에 남기지 않는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고 하자.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 정말 기가찬다.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가 있나요! 어이없어요. 당신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정말 화가 나네요.” 라는 말을 한다고 치자. 그 분노의 감정이 비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분노의 감정은 상대방을 다시 분노하게 만들거나 회피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 때, ‘저 사람의 저런 행동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데, 진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나의 본 마음은 무엇일까?’ 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다. 대부분의 공격적인 마음의 밑 마음은 ‘불안’이라는 것이다. 그 불안의 밑마음은 ‘의존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본 마음을 자신 스스로도 모르니, 어떻게 상대방에게 이 마음을 표현하겠는가!
“오늘, 당신의 행동은 당신으로서는 그냥 예사롭게 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자극이 되었어요. 좀 불안하고 위축되었어요.” 라고 해 보면 어떨까! 결코, 상대방의 행동 그 자체에 대한 비난이 들어가서는 안 되고, 나의 불안, 즉 내가 믿고 의지하고 관심받고 싶은 대상에 대한 나의 불안을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동 그 자체에 대한 분노의 화살, 비난, 질책 등이 들어가면, 상대방은 저절로 억울함, 위축감 등등으로 역공격 내지는 피하는 방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결코 상대방의 행동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 마음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부부사이에, 진짜 본마음을 말하지 않고 사용되는 극단적인 어휘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사는지 모른다.
“그래, 오늘 당신의 이러이러한 부분 때문에 내가 정말 미치겠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나도 정말 미치겠어! 앞으로 계속 그렇게 내 행동이 못마땅하면 그만… 그냥 그만 살지 뭐. 정말 못살겠다.!”
“뭐라구? 그만 살자고? 어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어! 좋아. 그만 살아! 당장 이혼하자구!.”
일상생활에서 관계가 좋지 않은 부부사이에서, 이런 식의 도전적인 대화가 오고가기 쉽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사실은 온데간데 없고, 표현방식에서 서로에 대한 비난과 탓만 일삼았기 때문에 복수하듯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에 바쁠 뿐이다. 스스로의 상처 난 마음을 스스로가 포착하지 못하는 것, 그 본 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바꾸어보면 어떨까!
“오늘, 당신이 나에게 이러이러한 말을 했었죠!! 그 말이 저러저러한 내용이었죠. 그 말을 듣고 내가 불안해 지더라구요. 당신은 그냥 예사로 한 행동이었을텐데! 분명히.” 라고 한다면, 아마도 상대방은 이렇게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불안했구나! 별일 아닌 것이었는데!” 라는 반응이 올 수도 있고 별 말없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금 이런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쎄 말이예요. 내가 당신에게 참 많이 기대고 싶은 모양이죠! 당신의 그런 작은 행동 하나에 이렇게 내가 불안하다니, 참 저도 힘들어요!”라고 한다면, “아 그래! 나도 나의 그런 말투 등, 좀 생각해 보아야겠네.” 혹은 “그냥 좀 편하게 생각해~”하면서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의 본 마음을 말하면,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이 훨씬 적어진다. 자신 쪽으로 완전히 초점이 맞추어지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 화살이 가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런 반응들은 대부분 나의 마음의 ‘투사(projection)’이다. 투사하지 않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냥 상대방은 ‘그렇게 할 뿐인데’, 그 행동들이 나에게는 불안하게 느껴지고, 상처가 되고, 공포스럽고, 무섭고, 괴롭고, 힘들어지고, 너무 좋고, 예쁘고, 밉고 등등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면에서는 투사된 마음들은 모두 내 마음이라고 머리로 생각할지라도, 실제적으로 그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그렇게 될 리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정말,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발생된 나의 마음이라는 느낌이 강력한 것이다. 남들이 아니라고 하여도, 분명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일어난 문제이므로 상대방의 행동이 바뀌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같은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나의 비례적인 느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마음속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본 마음에 들어가면, 그 마음에 머무르는 힘이 생긴다.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본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면, 상대방 탓으로 인한 감정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이 엄청나게 괴롭고 상처가 된다. 한마디로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마음에서 불이 나듯 활활 타오르는 괴로움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내면 감정 때문에 발생된 외부자극에 대한 개인적 반응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오직 상대방의 문제라고만 느껴지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 너무 힘들다. 적개심은 불과 같은 것이다. 결국, 자신내부의 불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확확거린다. 말이나 말투나 표정이나 행동 등이 불붙은 듯 타오른다. 불은 다시 불을 일으킨다. 그 때 만약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 불똥은 그 사람에게로 튄다. 얼마나 불행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불을 가라앉히는 것은 자신의 ‘깊은 성찰’ 혹은 ‘지성’으로 가능하다. 그 불 아래의 ‘본마음’을 깊이 바라보고 머무를 때,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 통제하는 힘이 생기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불면, 그냥 바람이 부는 것이다.
부는 바람에 대한 ‘느낌’은 나의 몫인 것이다.
바람이 분다고, 바람에게 탓을 할 것인가!
그냥, 바람은 그냥 불 뿐이다. 다른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상대방에게 향하는 마음은 접어두자.
오직 나의 ‘본 마음’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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