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정의 함정
“세상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쯤 이러한 물음을 진지하게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였을 때, 어떤 사람이 되었을 때, 난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 라는 자문자답이 될 것이다. 이런 저런 말로 여러 가지 내용을 표현하지만, 많은 선각자들의 내용을 종합해서 느껴보면, ‘스스로의 내면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의 삶을 영위하는 이’ 라고 요약되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가장 우선적인 조건은 무엇일까를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그냥 평범하게 느껴보면, ‘우선, 자신 스스로가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렇다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나를 사랑해 주었던, 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라고 쉽게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어릴 때는 주요양육자로부터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서서히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사랑하는 깊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강한 인간의 모형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무도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 라고 할 때, ‘아무도’하는 그 이면에는 놀랍게도 가족이 많이 떠올려 질 것이다. 사랑받으려는 몸짓을 많이 하였건만, 가족은 여러 가지의 이유로 말미암아 그럴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가족의 메시지가 이제는 ‘나 스스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된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사랑받는 사람의 삶을 방해하는 내면의 함정이 늘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은밀하게 혹은 소리쳐 선언하는 목소리가 있다.
‘난 못났어.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야. 나는 가치가 없어. 나는 비열한 부분이 많아.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겉으로 괜찮은 척 하지만, 사실 나를 알면 모두 나를 떠날 거야. 어쩌면 난 잘난 것 같은데, 사실 이것은 불안해. 솔직히 말해 내가 뭘 잘한다는 거야. 너희들은 나를 잘 몰라! 내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정말 두려워,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 아...불안해 등등’
이러한 소리들은 너무나 크고 집요해서 그 말들을 거부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래, 난 그런 사람이야. 난 못난 사람이야.’ 라고 믿는 것이 더 쉽다. 바로 이것이 함정이다. 헨리 나웬은 이것을 ‘자아부정의 함정’이라고 표현했다. 아래의 글들은 그 내용(Henri Nouwen, 1999)을 일부 인용하면서 심리학적으로 재해석해 본 것이다.
인간을 연구하는 정신과학자들은, 지난 수세기동안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함정은 성공, 인기 혹은 권력이 아니라 ‘자기부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가치 없고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소리들을 믿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에게 성공, 인기 그리고 권력은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쉽사리 인식된다. 즉, 자신 내면의 영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정욕구, 허망함, 허전함, 외로움, 무가치감, 경시감, 박탈감 등을 메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적으로 성공을 취하고, 권력과 명예와 재산 등에 스스로를 매달리게 만든다. 가만히 그 매달림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 함정은 바로 자기부정, 자기거부의 거센 목소리이다.
우리는 얼마나 빨리 이런 유혹에 빠지는지 끊임없이 놀라고 있다. 자신의 핵심역동에 따라서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혹시나 어떤 사람이 그들의 역동으로 우리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때에, 혹은 거부당할 때에, 혹은 홀로 내버려지고 포기될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드디어 증명된 것이야.”
“내가 이래서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인데… 드디어 내 모습이 들통났군.”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하거나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한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난하려는 성향이 더 크다. 그것도 나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그의 심리적 문제점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자기식대로 비례적이지 않게 비난하고 질책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로 껴안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기본배경은 바로 ‘자기부정’ ‘자기거부’의 뿌리 깊은 어두움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럴 때 우리의 ‘어두움’은 말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야…. 나는 소외되고, 잊혀지고, 거부되고, 포기되어 마땅한 존재야.”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아닙니다. 자기부정은 그래도 겸손한 것이잖아요. 자기도취라는 오만함이 더 문제가 아닌가요?”
오만함은 실상 자기부정의 또 다른 측면일 뿐, 사실 동일한 것이라고 본다. 오만함은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존경하는 태도가 아닌가! 오만함을 최종적으로 분석해보면 ‘쓸모없는 자기모습’ ‘무가치하게 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자기’를 다루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자기 부정과 오만함은 서로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아부정 속에 자만심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오만함 뒤에 깊은 자기부정이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두 측면이 우리 내면에 잠겨져 있는 한, 우리의 기세가 등등하든 그 반대로 위축되건 간에 진실과의 접촉을 잃게 되고 현실에 대한 나의 비젼은 왜곡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내면 안에서 자아부정의 유혹을 스스로 파악하고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자아부정은 오만함이나 낮은 자기평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아부정은 대부분 불안정한 사람의 신경증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 신경증은 자주 그리고 훨씬 더 깊은 인간의 어두움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증상이다. 이 어두움이란 자신의 존재가 참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 자기 부정은 우리에게 “사랑받는 존재”라고 말해주는 거룩한 목소리와 대립되기 때문에 영적 삶에 가장 큰 적이 된다.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실존에 핵심적인 진실이다. 이 진실을 왜곡시키는 ‘내면의 함정’ 속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마음을 포착’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마음의 각종 기능 중 ‘정서’를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자신의 정서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자기존재를 직면해가는 첫 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외부의 세상, 타인, 혹은 무엇인가가 우리를 괴롭히고 피곤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그건 아니다. 정말이지 외부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극제가 될 수는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나의 몫이다. 외부로 문제의 원인을 귀속시키는 한은, 결코 어떤 문제라도 해결점은 없다. 오직 그들에 대한 나의 마음, 나의 내면이 그 핵심이다. 외부의 모든 것들은 모두 내 마음의 투사체일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를 괴롭히고 피곤하게 만든다. 그 주범은 우리 내면의 함정들,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무가치함, 오만함, 도취감 등이다. 즉, 현실에 비례적으로 작용되는 정서들이다. 함정들에 대한 더 깊은 과거 역동의 원인이 있다 할지라도, 그 핵심은 지금 여기에서 지속적으로 울러 퍼지고 있는 우리의 내면의 함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더 이상 괴롭힐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랑받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부모들, 교사들, 배우자들, 아이들과 친구들이 사랑해 주거나 상처를 주기 훨씬 이전부터 친밀하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태어난 존재들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진실이다. 나의 주변 온갖 사람들이 상처를 주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사랑받고 있는 이 세상의 중심적인 존재였다. “너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하늘의 목소리를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깊이 느껴야 할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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