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지혜에 이르는 4가지 단계들(2)
(앞의 글에서 계속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런 감정이 어떤 현상 즉, 실제 외부의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이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이것을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어떤 분야의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 사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학교에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학교에서는 우리에게 이것만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을 가르쳤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난 꽤 많은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지요.” 어쩌면 우리는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배우지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로 ‘살기위한 수단과 방법’을 배웠다고 볼 수 있다. 목적이 없는 항해는 그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배 젖는 법을 배우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스위치 작동법을 배웠지만, 목적없는 항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진실로 깨닫는 것, 바로 이것이 ‘성숙’의 의미이다. 성숙하다는 것은 ‘책임’이라는 의미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의 감정은 ‘내 것’이며, 그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정서적으로 성숙하다는 의미는, 나의 감정, 느낌은 오직 내 안에 있다는 것과, 그 해답도 내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세 번째 단계는 그런 감정과 우리 자신을 결코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때때로 우리는 나의 존재와 나의 감정은 별개라는 것, ‘행동따로 마음따로’ 인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정말 아닌 것 같은데, 내 마음은 계속 그 쪽으로 끌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감정과 존재자체가 자동적으로 동일시되어 버린 것이다. 부정적 감정 속으로 함몰되어 나의 존재가 한없이 낮아지고, 하찮아 지면서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외부의 어떤 상태로 인하여 감정상태가 힘들어지면, 나의 존재가 그냥 무너져 버리는 경험도 많았을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분나쁘게 하였다면, 우리는 곧바로 존재에 상처를 입어 화를 내며 되돌려 주거나, 그대로 쓰러져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나의 존재가 동일하게 되어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과 ‘감정을 느끼는 존재’를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개념을 명확하게 느끼게 되면, 어쩌면 우리는 제법 ‘성숙된 인격’으로 진척된 상황이라고 보아진다.
‘나’라는 존재자체와 상관없는 것이 ‘나의 감정’이다! 그런 감정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우리의 근본적인 자아를 정의하지 말자. “나는 우울하다!”라는 표현이 정확할까! 그 상황이 우울한 바람을 잠깐 몰고 온 것일 뿐, 나의 ‘존재’가 우울해져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외부상황과 우울함을 연결시켜야지, 나의 존재와 우울함을 붙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다시말하면, 그 상황이 나의 마음에 잠깐 우울한 바람을 스쳐지나가게 한 것일 뿐, 그 바람자체는 ‘나’가 아닌 것이다. 외부대상에 대한 표현방식이 “그러그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마음이 좀 우울해졌어요.” 라고 한다면, 막연하게 “저는 우울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나는 우울하다” 라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그런 감정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망상이고 오류이다.
바람부는 들판에 내가 서 있다고 상상해 보라. 가만히 바람을 맞고 지나가게 하면 된다. 나는 가만히 서 있으면 된다. 바람은 바람이고 나는 나다. 그 바람은 지나간다. 즉, 지금 이 상황에서 잠깐 우울함이 있고, 지금 여기에 상처의 감정이 있지만, 그 상태 그대로 잠깐 머물게 해 보자. 그냥 그런 감정들 홀로 있게 하자! 오직 바라보기만 하자! 그것들은 지나갈 것이다. 참으로 모든 것은 지나간다. 우리 스스로의 우울과 전율과 같은 기쁨은 행복과 전혀 상관이 없다. 이런 감정들은 시계추의 흔들림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전율이나 흥분을 찾는다면, 다음에 올 우울함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약을 원하는가? 견딤을 준비하라. 시계추의 한쪽 끝은 다른 쪽 끝으로 날아간다. 그냥 ‘그런 감정들’이 있는 것이지, 그것은 결코 ‘나’가 아닌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꾸기를 원하는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즉, ‘나’자신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하여,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알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외부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정신적으로 깨어있지 않고 잠들어 있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이 변하면 자신의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은 우리스스로가 잠들어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다른 사람이 변화한다면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 이웃이 변한다면, 나의 부모가 변한다면, 나의 남편이 변한다면, 나의 아내가 변한다면, 나의 자식이 변해준다면, 삶은 얼마나 좋을까?’ 만약, 다른 사람이 변하면 우리 기분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길 원한다면, 대상이 변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자신은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여전히 의존적이 된다. 늘 상대에 따라서 내 인생이 좌우된다. 즉, 여전히 잠들어 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자신이고 약을 먹어야 할 사람도 바로 내 자신이다. 만약 우리자신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 내 기분이 좋다”고 계속 고집하고 있다면, 이건 잘못이다! 세상은 ‘내가 만족스럽고 행복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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