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를

내 기도는 술 냄새에 젖어도

낙산1길 2013. 10. 22. 11:03

가족을 끌고 찾아간

일본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놀라운 우연이 찾아 찾아왔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했던,

국교수립 이전의

중국을 여행할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간다'는 생각에만 들떠서

따라나섰던 여행에서

 성라자로 마을의 이경재 신부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레티치아 수녀님과 일행이 되었으니

그것은 내 생애를 묶는 행운의 황금매듭이었다.

 

 

 

 

그분들과 9명이 일행이 되어

열흘 가까운 중국 여행을 하던 도중,

나에게 세려를 주도록

이경재신부님께 압력(!)을 넣자는

모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나는 몰랐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한수산이는 세례만 주면

분명히 잘 믿을 사람'이라고

그분들이 판단했단 말인가,

그때 내가드린 첫마디가"

저 가톨릭 3수생인데요"였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백두산 천지에서

'요한 크리소스토모'로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의 영광을 안았다.

 

백두산 천지가 비췻빛으로

내려다보이는 모래 언덕에서였다.

수녀님도대부님도

함께 해주신 일행들도

세례식은 기쁨의 눈물로 넘쳤다.

 

 

 

 

그날, 백두산을 내려와 자정이 넘어서야

연길의 숙소로 돌아왔다.

몸을 닦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짐을

풀었을 때였다.

 

 

이것을 어쩔 것인가,

장춘에서 중국 측 연구소로부터

선물로 받은 도자기 술병이 깨질까

 조심하며 속옷으로 싸고

또 싸고 잠옷으로 둘둘 말아서

가방 안으로 적시고 있지 않은가.

 

목욕을 하고 그중 덜 젖은 솟옷으로 갈아입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눅눅하게 술에 젖은 옷에서

술냄새가 솔솔솟아올랐다.

 

무릎을 꾾고 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몸을

감싸는 그 지독한 중국술 냄새라니,

 

주님,오늘 제가 주님의 아들이 되어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꼴입니다.

 

술 냄새를 솔솔 풍기며

첫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제 삶이 술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더라도 제 믿음만은

흔들리지 않게 지켜 주셔야 합니다.

 

 

 

 

언제나 제 곁에 계시면서

그것만은 해 주셔야 합니다.

 

그날 나는 취재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주여,저는 종이옵니다.

저를 치소서,제가 울리겠나이다.

 

저를 때릴 때마다,

제가 울겠나이다.

주여,저는 이제 칼이옵니다.

 

저를 들어 자르소서.

언제나 푸르게 날을 세워 주님께서

쓰실 그날을 기다리겠나이다." 

 

 

 

 

오늘 읽은 평화신문에서

너무나 인상적인글이라  올립니다.

하느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부르신다고 하시는데

절묘한 만남을 축하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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