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는
한 여름 오후,
설거지를 마치고
앞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고 있는데
살며시
대문이 열렸다.
돌아보니 삼년 전부터
동냥을 하러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중년의 벙어리 남자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무명옷이 더워 보였다.
여느 때 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서있는 그에게
이마에 맺힌 땀이라도 식히라고
우선 물을 떠다 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벌컥벌컥 마셨다.
잠시 뒤 내가 사랑채
옆방으로 들어
가라고 손짓하자
그는 의아해 하며 멈칫거렸다.
평소처럼 튓마루에
밥상을 차려 주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가라니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나 보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을 뒤져
남편이 입던 삼베 적삼 한벌을 그에게
갖다 주면서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는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부엌에 가서 상을 차려 나왔더니
어느새 그는 옷을 갈아입고 앉아
있었다.
편히 밥을 먹도록 건너채로 가서
빨래를 개다가 식사를 마쳤나 싶어
대접에 물을 떠다 주었다.
그는 다른 때보다도 공손하게 받아 마셨다.
마지막으로 동냥자루를 달라고 해서
보리쌀을 조금 담아 주자
그는 무슨 말을
할듯 하다가 이내 그냥 돌아섰다.
다음날 해거름 무렵,
어제의 그 남자가 또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이번엔 동냥자루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왔던 사람이 어쩐 일로...'
그런데 그가 다가와
손에 사이다 한 병을 쥐어 주고는
얼른 마당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주머니,용서하십시오.
먹고 살기가 힘들어
그 동안 벙어리 행세를 하며
얻어먹고 다녔습니다.
이제부터는 날품팔이라도 하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월간 좋은 생각 중에서>
집가까이 시장 장날에 가면
아주 구성진 음악소리와 함께
검은 타이어고무바지를 입고
엎드린 아저씨가 보인다.
처음엔 마음이 짠하여
푼돈을 주고 오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아들한테
올 같이 더위에 그냥 있어도
더워 견디기 힘든데,
어찌 그 바지를 입고 있을까?
하였더니 쉽게 벌기위한
것이 아닐까!!하였다.
어저께는
눈이마주쳤다.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오늘 따라 그 아저씨가 자꾸 눈에 밟힌다.
'마음의 고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낌표, 물음표, 쉼표 (0) | 2013.09.12 |
---|---|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말 (0) | 2013.09.11 |
밀가루 장수와 굴뚝 청소부 (0) | 2013.09.03 |
진정으로 내어주는 삶 (0) | 2013.08.11 |
병실로 배달된 피자 (0) | 2013.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