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픈 곳’, 사랑이 필요한 자리 (1)
두말할 필요없이 사람에게는 각자 나름대로 정신적으로 가장 ‘아픈 곳’이 있을 수 있다. 아픈 곳이라고 하여, 어떤 심리적 상처나 구체적인 불행한 경험에 의해서 생긴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지나친 인정과 사랑을 받아서 그것에 목을 매는 경우 역시, 상처받기 쉬운 영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깊은 수행을 통하여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이러한 상처는 누구나 다 지니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본다. 예컨대, 자라면서 “나는 조부모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과 존중을 받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조금의 상처도 없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이 주변 제반 여건에 의해서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실패하거나, 무시를 받으며, 함부로 대하는 취급을 받는다고 하면, 그는 그런 대접을 상처없이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라면서 무시를 받았을 경우에는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이 가장 아픈 곳일 수도 있으며, 또 가족 안에서 최고의 인정을 받았을 경우에는, 어느 집단에서 나를 최고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 그 자리는 나에게 아픈 곳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주변환경에 취약하지 않을 수 없는 ‘아픈 곳’을 잠정적으로 지니고 있고,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않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본다. 즉, 누구라도 자신 속에는 아픈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라.
아픈 곳이 있다할지라도, 사실상 우리의 아프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 양적으로 보자면 정말 작은 한 부분이 아플 뿐이다. 그러나 그 아픔은 매우 크게 느껴진다. 간단하게 몸에 있는 상처를 생각해 보자. 언젠가 필자는 오른쪽 발 뒷꿈치 각질을 무심코 잘못 뜯어 생살을 건드려 피가 나면서 살짝 패인 적이 있다. 사실 별것은 아니었고 크게 아프지도 않았는데, 걸으려고만 하면 온 몸의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면서 불편하고 심지어 살짝 절뚝거리기까지 하였다.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도 않는데, 걷기시작하면 발바닥에 통증이 오면서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다. 이렇게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리상태에서도 우리의 아픈 통증은, 다른 건강한 부분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신경을 모아야 할 만큼 크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아픈 곳’은 우리에게 크게 다가온다. 즉, ‘아픈 곳’은 자기 목소리를 간절하게 낸다. 다수의 침묵하는 ‘아프지 않는 곳’보다, 소수의 ‘아픈 곳’은 간절함으로 호소한다. “아이구... 여기가 아파. 날 좀 신경을 써 주세요.!”라고... “주인님! 당신의 부주의로 내가 이렇게 조금 아프니, 보통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라고... “아... 꼭 부주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주인님 스스로가 몸을 챙겨주세요.”라고... “이렇게라도 잠깐 아프지 않으면, 주인님이 저에게 관심을 가지신 적이 별로 없잖아요. 섭섭해요. 저를 귀하게 취급해주세요!”라고... 즉, 우리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달라는 것이다. 아픈 곳의 신호는 스스로를 향한 사랑의 ‘콜’인 것이다. 통증은, 어느 누구라도 관심과 챙김을 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메시지인 것이다. 즉, 통증은 사랑을 향한 신호이다. 통증은 ‘필요한 그 무엇’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모교 교수님의 글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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