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쁨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장 감사할 때가 어느 때일까!
자신이 자기스스로에게 가장 기뻐할 때가 어느 때일까!
대부분의 우리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거나 오랫동안의 미해결된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환희심을 맛본다. 뜻밖의 행운이 뒤따르거나 오랜 갈등이 해결된 상황일 때도 대단히 안도하고 기쁘다. 일일이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우리의 갈망과 욕구가 채워졌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렇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는 것은 정말 기쁘다. 흥분된다. 꿈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이 기쁨이 계속되는가 아니면 또 다시 새로운 것들이 필요한가! 일상을 사는 우리들은 새롭게 채워야 하는 것이 필요하고 뭔가는 모를 또 다른 미해결된 욕구 속으로 들어가기 쉽다. 이런 상황들을 ‘난 이미 알고 있었고, 지금도 잘 인식하고 있어!’ 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본 마음에서는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많다. 사실 머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가슴은 머리와는 상관없이 또 다른 욕구충족을 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욕구충족을 위하여 삶의 많은 시간을 투여한다. 사실 욕구충족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기실현’ 이라는 정상적인 인간본연의 창조성이며, 그 창조성은 사회적인 승화작용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자기’로부터 한발 떨어져서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자문해보려는 태도는 자기욕구를 어느 정도라도 채워 본 사람들이 건강하게 하는 것이니만큼, 채울 수 있는 한은 채워보는 것도 좋으리라 여겨지기도 한다. 미해결된 욕구가 있는 채로, 초월된 삶에 대하여 논의할 때는 때론 그것이 ‘삶에 대한 회피’의 합리화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채울 수는 없다는 엄연한 사실과, 어느정도 욕구충족을 해 본 많은 사람들 중 지각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물음 ‘진정한 기쁨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개인적인 욕구의 해결여부와 관계없이 행복한 삶의 자세를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정말이지, 우리는 가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힘겹다. 고달프다. 삶이 고통스럽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라. 내가 무엇을 성취해서 기쁜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행복해 할 때, 정말 한없이 행복하지 않았던가! ‘상대와 나를 동일시하여 기쁜 것이다.’ 라고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며 설명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사랑과 기쁨 등을 심리학적인 해석만으로는 어쩐지 아쉬운 감이 있으며, 아마도 더 깊은 하늘의 뜻을 느껴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대상의 행복을 통해서 나 스스로도 행복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사랑’의 힘의 위대성과 절대성과 참된 기쁨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놀랍고 신비로운 과정으로 느껴진다.
예컨대 단순하게 가정안에서의 상황을 느껴보자. 우리가 가장 행복할 때는 나의 ‘어떤 것’으로 ‘자녀’나 ‘배우자’가 정말 행복해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경우가 아니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만족하였다 할지라도, 내 사랑하는 가족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면 나의 만족은 결코 나를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아프면 함께 아파지고, 힘들면 같이 힘들어진다. 상대를 위해서 최선을 다 했을 때 상대방이 진정 행복해 한다면, 그것자체가 주는 행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즉 우리의 참된 행복은 걸림없이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때이며, 타인과 내가 ‘하나’가 된 듯, 함께 기뻐할 때 일 것이다.
대상에게 자신의 무엇인가를 ‘내어 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이제 더 이상 ‘가지려는 힘듦’에서 탈피할 수 있을 만큼 충족되었다는 뜻이다. 둘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다 줄 수 있는 마음자세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선 첫 번째의 것, 즉 ‘가지려는 힘듦’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더 이상 가지려고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와 너그러움이 생겼다면, 이것은 그것자체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이 있을 것이다. 남에게 내 자신(혹은 내 자신의 무엇)을 내어주어도 걸림이 없는 것, 이것은 결코 어떤 교만이 아니라 여유로움의 힘이다. “이미 많이 가졌기 때문에 ‘가지려는 것’에서 탈피되지 않았나!”라는 해석, 부러움과 시기(!)심을 합리화한 객관적인 듯한 표현 등을 통하여,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고 느껴진다. 이미 어느정도 채웠기 때문에 비워지는 것, 이것도 우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감사하면서, 그 ‘채워 짐’이 타인에게 베푸는 힘으로 작용하면 좋은 것이다. 물론, 채워지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만족감’을 통하여 이미 채워진 것과 다름없는 삶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성숙한 느낌을 줄 것같다. 미래를 위한 끝없는 욕망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만족감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면 늘 ‘미래’는 영원한 ‘미래’가 될 것이니까.
두 번째의 것, 즉 소유의 여부와 관계없이 사랑이라는 것 자체로서 기쁨을 느낀다는 측면이다. 불교의 경전해석 중에는 “중생을 통하여 부처는 자신을 깨닫기 때문에, 중생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중생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결코 중생을 ‘낮은 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느끼고 참된 기쁨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의 가장 큰 성취감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 축하와 기쁨을 ‘함께 느끼는 마음’을 통해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받기 위하여 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인정받고 보상을 받으며 칭찬 받기를 원하는 그 모든 욕구들 너머에는, 건강한 형제자매처럼 서로 사랑하려는 단순하고도 순수한 갈망도 있을 것이다. 혹시 우리는 온전하게 상대방을 위하여 가게에서 기쁘게 물건을 고른 경험이 있지 않는가! 상대방을 위한 선물을 마련하고자 이곳저곳을 행복하게 다녀본 적이 있는가! 상대방을 위하여 진정으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랑의 말을 전달한 적이 있는가! 불편한 몸을 가진 분들을 사심없이 도와준 적이 있는가!
우리의 ‘무엇인가’를 내어 줌으로써, 온전하게 우리의 삶이 완성된다는 진실! 고도로 경쟁적이고 탐욕스러운 세계 속에서 우리는 주는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기 쉽다. 마치 행복이란 ‘가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가만히 주변을 보라. 과연 가진 것 때문에 참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지! 그건 진실이 아니다. 가지면 더 가지고 싶은 것이 보편적인 마음이다. 탐욕은 탐욕을 부르는 씨앗이다. 참다운 기쁨, 행복 그리고 내적인 평화는 우리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줌으로써 얻어진다.
행복한 삶이란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이다. 하지만 이 진리는 우리가 자신의 ‘부서짐’과 대면할 때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빵은 나누어지기 위하여 쪼개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의 가진 것을 내어줘야 한다고 해서 고통 속에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더 주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더 빛나게 하기 위하여 멀쩡한 유리를 깨뜨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예를 들어 죽음을 맞이하신 분에게는, 일부러 죽을 때가 되었다고 억지로 죽기를 바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을 실존의 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축복이라고 여길 때, 그 죽음이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다. 죽을 때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고도로 ‘성숙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즉, 자신을 자연의 한 일부로 느끼면서 수동적으로 내어놓을 때에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 그렇게 나뉘어지고 내어주는 것이 스스로에게 축복이 되어야만, 진정한 축복이라는 뜻이다.
우리 자신을 서로 나누려는 가장 깊은 갈망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진정하게 거짓없이 드러내고 상대방의 마음을 진실하게 나누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의 참 맛’을 정말 모를 수 있다. 내 마음을 그대로 내어 주는 것,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이것 역시 나를 완전히 내어놓는 순간이다. 내어 놓을 때 그 해방감과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내어놓기까지가 두렵고 괴로울 따름이지, 사실 내어 놓는 것만으로도 깊은 두려움과 절망감이 사라질 수 있다. 마음의 돌덩이가 내려진 것이다. 더욱이, 내 온 마음을 상대방을 위해서 드러낸다고 할 때, 그것은 한마디로 ‘신비’이다. 그대로 내 마음 전부를 상대방을 위하여 에너지를 쏟는다고 한다면, 그 던짐은 저절로 상대방을 사랑하게 만드는 ‘존재의 기술’이 될 것이다.
상담 및 심리치료 특히 ‘집단심리치료’ 등의 장면에서 상대방을 위하여 진정하게 나의 마음을 피드백할 때, 그것은 ‘무조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적절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상처주는 말이 되었을지라도, 상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그 마음 때문에 ‘그냥’ 그것자체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은 상처되는 표현방식이나 태도를 뛰어넘을 만큼 결국에는 소중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바람직한 방식으로 피드백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정말이지, 마음을 내어주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지 않을까. 그것은 가치로운 ‘내어 줌’이 되는 것이다. 그 축복은 상대방은 물론이고 내어주는 자신 스스로가 받는 가장 큰 축복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내어 줌’의 진정한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해 보자.
우리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부족한 나 자신이 과연 무엇을 내어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제대로 된 달란트가 없어. 나는 아직 그럴 수준이 아냐!” 이렇게 달란트에 집중하여 말할 때에, 우리는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성향을 갖게 된다.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가 아니라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이다. 어떤 달란트로서 무엇을 내어 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나는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이다. 내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삶에서 느끼는 즐거움, 나의 내적 평화, 나 자신의 편안함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의 내적평화와 편안함을 통해서 상대방이 저절로 편안해 질 수 있는 삶, 이것은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가장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이다. 무엇이 잘나서 남에게 내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큰 착각이다. 우리 자신의 존재자체가 그대로 드러날 때, 나의 진정한 마음이 그대로 내어질 때, 상대방을 위해보겠다는 마음이 그냥 전달될 때, 그 자체가 바로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달란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 스스로의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 존재자체의 내어짐이 인간관계에서는 ‘진실된 마음표현’ 인 것이다. 특별히 가진 것은 없으나, 상대를 위한 말과 행위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것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음을 알 것이다. 우리는 아주 적은 달란트밖에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줄 수 있는 많은 선물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선물들은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식들이다.
이 선물들은 우리 자신의 작은 부분들, 예컨대 우정, 친절함, 인내, 기쁨, 평화, 용서, 부드러움, 사랑, 희망, 신뢰, 진심어린 피드백, 그리고 기타 많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웃에게 나누어야 할 참다운 선물들인 것이다. 오히려 진정한 이런 선물들이, 눈에 보이는 달란트 아래에 숨겨져 묻혀 있음을 더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예컨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봉사하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온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 존재 자체의 부서짐을 통하여 우리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선물들을 주고 있지 않는가! 아무것도 준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는 사람, 그들은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참된 선물들을 주저함 없이 내 놓는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가장 많이 주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행복한 ‘가난한 자’들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서 ‘가난한 자’가 아니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가난한 자’들이다. 그 가난한 자는 ‘최고의 부자’인 셈이다.
진정한 기쁨은 우리 존재자체로서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내어줄 수 있다는 것, 참된 기쁨은 나의 존재를 드러내어 내어줌으로써 시작되는 것 같다.
모교 교수님 방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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