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아껴야 할 때도 있지만, 해야할 때도 있다(2)
집단심리치료 장면에서 상담자역할을 배우기 위하여 예비상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구체적인 수련은 ‘감수성 훈련’이다. 내담자의 긴밀하고 애매한 이야기들을 귀 담아 들으면서, 그 속에 있는 감정들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그로 인하여 적절한 피드백을 하는 상담자의 언어능력은, 사실 훌륭한 ‘경청능력’이 아니겠는가! 이 능력은 바로 ‘뛰어난 감수성’이라고 볼 수 있다.
감수성이 건강하게 발달된 상담자는, 침묵을 할 때와 말을 할 때를 적절히 잘 안다. 그 때와 시기가 매우 적절하여, 치료적으로 내담자를 도울 수 있는 기술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들 중에는, 때로는 눈치를 많이 보고 상처가 많고, 적대적이고 경쟁심이 많은 사람들도 제법 많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하여 상대방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내는 습관으로 인하여, 감수성이 발달된 경우이다. 이들은 그 밑마음에 억압된 부정적 감정이 잘 극복되지 않으면, 오히려 그 감수성으로 상대방을 상처주는 반응을 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약점을 민감하게 알아차려서 여러 가지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비판하고 못마땅하게 느끼기도 한다. 이들이 자기내면의 부정적 감정들을 잘 바라보면서 극복하게 되면, 이러한 감수성은 자신과 타인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것을 극복하지 못하여, 감수성을 잘 못 활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무사히 잘 극복하고 도움이 되는 순수한 감수성이 발달된 사람들도 많다.
감수성은 말로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침묵 속에서도 그 빛을 발휘한다. ‘침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말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침묵 속에서 나오는 울림이기 때문에 ‘말’ 그 자체는, 사실 침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침묵하지 않고 말만 계속 하는 사람을 보라. 그 옆에서 그 말을 한번 들어보라. 정말 피곤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참된 ‘말’은, 질 좋은 ‘침묵’에서 나오지 않을까! 참된 침묵은 스스로의 내면에 깊이 들어가서 다시 ‘지금-여기’로 빠져나오는, ‘건강한 자아기능’에 많은 영향을 준다. 이들의 침묵은 안정적인 생활에 큰 도움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말’은 정말이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쓰러지게도 한다.
어리석은 자의 말은 여행 중의 짐과 같고
지각있는 이의 말은 기쁨이 된다. (집 21. 16.)
그렇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지친다. 즉, 여행 중에 짊어져야 할 짐 같다. 특히 가까운 주변 사람들 중에서 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한다면 우리는 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답답하고 짜증나며 싫증날 것이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고,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가 그런 말을 하는 분이라면, 집을 피하여 나가고 싶을 것이다. 사실은 그 ‘집’ 혹은 ‘부모’를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안 듣고 벗어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부모가 스스로의 ‘말’ 이,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나 어리석은 자신의 생각 등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끊임없이 가정에서 이러한 말들을 하면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어떠하겠는가! 이것을 부모는 깊이 느껴야 할 것이다.
일상의 생활을 하는 우리는 사실 ‘말’로서 주변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수한 경우에는 폭력이나 사고로서 괴롭히기도 하지만, 대체로 많은 경우에는 ‘말’ 그 자체가 가족갈등의 주범이며, 인간관계의 큰 갈등의 씨앗이 된다. ‘말’은 정말이지, ‘독’도 되고 ‘약’도 된다. 꼭 같은 말을 하여도 그 사람의 인격이 어리석은 수준이냐! 지각있는 수준이냐! 에 따라서 그 말의 질은 많이 다른 것이다.
지각있는 사람은 그 말 자체가 하나의 선물이다. 생각이 깊고 주체성과 배려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은, 참으로 명쾌하고 따뜻하다. 자기의 정체성을 뚜렷이 가지고 있고 당당한 자존감이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사려깊은 관대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말’에서 풍겨나오는 인품이 저절로 느껴진다. 그런 경우의 ‘말’은, 그 자체로서 기쁨이요, 사랑이다. 그들은 말을 아낄 때도 알지만, 말을 꼭 해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다. 특히 상대방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나 고통 속에서 있을 때는, 보약과 같은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말’을 아끼지 않고, 상대방과 그 마음을 함께 하면서, 상대방에게 알맞은 ‘말’을 건네야 할 것이다.
이 경우의 ‘말’은, 상대방에게는 사랑이며 치료약이다. 이럴 경우, 오히려 ‘침묵’은 때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침묵하는 입장에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무슨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해 봤자...’ 등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가 한없는 아픔 속에 있는데 침묵하는 태도로 일관하게 되면, 발생한 어떤 일보다도 그 침묵 자체가 오히려 큰 ‘박탈’이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로부터 어떤 말을 주고받고 난 뒤, 개운해지고 뭔가 응어리가 풀리고, 삶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생각해보라. 그러한 말들의 주고받음은 정말 지혜로운 자들의 큰 선물이 아니겠는가!
입술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통하여, 진실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지각있는 자의 말은 참된 침묵으로부터 출발하며, 말의 때와 시기가 적절할 때, 우리의 삶의 질이 참으로 풍성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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