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이야기

펭귄들의 생존방식(1)

낙산1길 2014. 12. 21. 15:29

팽귄들의 생존방식(1)


누군가의 마음속1위-황제펭귄펭귄 - 위대한 모험


  오래 전에 MBC에서 방영된 ‘남극의 눈물’이라는 기획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 오르내리기도 하고, 이 프로그램을 인용하여 미사때 강론내용으로 들은 터라,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 TV 앞에 앉아 보았다.  

   영하 50도 시속 100km 눈바람이 불어오는 남극의 팽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팽귄들은 이 엄동설한 속에서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는 자기네들만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식지에 모두 모여 1㎡안 약 10마리정도로 에워싸 원을 아루며 계속 돌았다. 멈추면 안되고 계속 돌았다. 영하 50도의 온도에서는 멈추는 순간 바로 얼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계속 돌면서 움직여야 만이 열이 발생되면서 최소한의 얼어버리지 않는 온도를 유지한다는 말이리라. 원을 이루면서 계속 돌고 도는데, 그 밖과 안의 온도차는 약 10도란다. 강강술레처럼 안의 팽귄은 밖으로, 밖의 것은 안으로 계속 반복해서 돌았다. 만약, 안의 팽귄이 자기만 살겠다고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밖의 팽귄은 결국 돌아도 죽을 수밖에 없다. 얼어서... 밖의 팽귄이 죽는다는 것은 안의 팽귄도 연쇄적으로 죽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결국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비며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국가나 조직공동체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소중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거울이 된다는 측면은 느끼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상대방을 보면서 나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키워내게 되면,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깨달음의 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깨달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또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팽귄들은 서로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를 ‘알고’ 그렇게 했을까! 무엇을 깨달았을까! 생각으로 가슴으로 그런 것으로 ‘알고’ 했다는 것 보다는, 생존의 방법을 어떤 영적인 에너지로서 자연적으로 터득한 것은 아닐까!



    팽귄들은 우리 인간들처럼 어떤 책으로 누군가에게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언어로서 학습으로서 완벽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였던 것이다. 완벽하게 터득된 것은 ‘온 몸’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머리’나 ‘마음’으로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인간들처럼 말로서 사랑하여야 한다느니, 마음은 그렇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를 않는다느니, 알지만 잘 안된다느니, 이러이러한 일들 때문에 아직은 힘들다느니... 등등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직 ‘생존의 위협’정도는 아닌, 즉, ‘몸’으로 터득하기에는 우리의 상황이 아직 덜 위협적이라고나 할까? 혹은 무지 속에서 그대로 풍덩 빠져 있다고나 할까? 혹은 스스로를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온 몸’으로 간절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온 몸’으로 살아남는 것을 배운 그 배경의 핵심에는 이런 것들이 느껴진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삶이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배워가는 진리의 장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어떤 큰 힘의 한 지체라는 것, ‘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정말 놀라우리만큼 자기중심적이다. 인간의 욕구를 정상적으로 채워야 하는 최대정점인 ‘자아기능의 실현’을 위하여, 우리는 온 생을 바치다시피 하여 산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것이라는 것을 챙겨야 하고, 내것을 지켜내는 것을 배워야 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살펴 진로를 잘 개척해야 하고, 때론 누군가와 경쟁하면서 내것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에서 떨어져나가면 ‘낙오자’가 되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이 과정을 잘 이겨나간 사람은 ‘성공한 자’가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반드시 이 과정을 겪어야만 하며, 이 현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생활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음공부’도 사실, 이 과정을 잘 겪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며,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다. 내것을 벗어버리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것을 더 잘 채우기 위한 공부가 될 수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세상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굳이 ‘세속적이라느니, 수준낮은 상태라느니’ 라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현실을 건강하게 살아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속의 관계를 회피하고 무기력해지며,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황폐한 사람이 되어, 오히려 주변사람들을 가장 현실적으로 괴롭히는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초월하고 싶어 인간세상을 떠나서 조용한 곳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 그 마음 안에서는 현실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 있어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현실 도피의 한 수단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가족과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현실을 피하는 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