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이야기

'저항'의 치료적 의미(2)

낙산1길 2014. 8. 28. 07:21

'저항'의 치료적 의미(2)

 


-앞의 회기에서 계속됩니다.=

둘째는, 대상에게 느끼는 저항감이 ‘비례적이지 않을’ 경우이다.
  이 경우의 저항은 치료장면에서는 상당히 유효하게 활용된다. 타인들이 느끼지 않는 저항감을 스스로는 당연하게(!) 느끼면서 상담자 혹은 집단구성원들에게 투사하여, 상대방 탓을 투쟁적으로 하는 셈이 되므로, 그에 대한 분석진단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저항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정신역동 진단이 제대로 된다면, 스스로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저항감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은, 그것이 비록 긍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비례적이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삶을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특별한 감정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특별한 의미’는 자신을 새롭게 깨닫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집단심리치료의 장면에서는, 이 저항은 치료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된다. 저항감은, 개인적 대상에게 일어날 때는 대체로 ‘꼴보기 싫다.’ ‘무시된다.’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등의 감정이지만, 집단전체에게 향하면 ‘이런 작업이 무슨 소용 있으랴!’ ‘지금... 이것 뭐하는 거야!’ ‘아무 소용없어. 인생이 본래 그런거지 뭐!’ ‘치료자의 저런 개념과 행동은 문제가 많아.’ 등의 상황으로 확산된다. 이렇게 될 때, 이 감정을 반드시 집단원 모두에게 표출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표출’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직면’하게 한다는 뜻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직면을 위험하다고 느낀다.

   말을 하게 되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공격하면 어떡하나! 틀리다고 말하면 그건 바로 비난과 같은 거야!’ 등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료동맹이 긍정적으로 형성된 ‘집단’의 구성원은, 이러한 직면은 곧바로 자기통찰의 중요한 신호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통찰은 바로 현실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 굳건한 믿음 위에 이루어지는 ‘직면’은, 한마디로 말하면 ‘변화의 물꼬’ ‘자기와의 만남을 통한 지금-여기의 눈뜸’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치료’작업의 문을 여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 저항이라는 것이 따지고보면, 자기의 무의식과 현실과의 대면을 뜻한다. 무의식에 억압된 적개심이, 현실의 어떤 대상을 통하여 자극을 받게 되면, 그 대상에게 투사되어, 억눌렸던 적개심이 튀어나오게 되는 현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직면은 바로 자기자신과의 대면을 뜻하므로, 이 직면은 대단히 괴로우면서도, 치료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이때 이것을 거부하게 되면 아직 치료의 시기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더 방어하지 않을 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직면하게 되면, 그러한 저항이 바로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과거의 대상’ ‘어떤 과거의 상황’ 등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직면confrontation은 대단히 치료적으로 효과가 있는데, 그러한 저항이 유발된 과거의 미해결된 감정처리의 열쇠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열쇠를 열기 시작하면, 치료자는 충분히 그 감정에 대하여 다루어나가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깊은 정서적 통찰경험을 하게 한다. 그때, 미해결된 감정으로부터 서서히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이 이루어지게 된다.

  경험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따라서 저항은 바로 ‘직면’의 중요한 열쇠를 제공하며, 치료의 핵심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직면을 하기까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협조체제에 대한 동맹이 긍정적이며, 치료에 대한 지적개념이 확고하고, 용기와 인내심 등이 요구될 것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전문가의 분석진단을 받을 수 없으므로, 치료적으로 이 저항을 활용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저항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상대방의 변화를 당연하게 기대하며, 화를 내고 싸우거나 포기하고 괴로워하는, 즉 투쟁-도피의 반응양식으로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저항을 통하여 단절하거나 적대적관계로서 불행해 하는지! 자기내면을 보지 않은 채로, 상대방이 명백하게 자신을 힘들게 했다고 느끼고 있으므로, 이 저항을 결코 다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저항’의 증상은, 가족 중 가장 약자에게 혹은 의존대상에게 떠 넘겨지므로, 대단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 증상은, 그것 자체보다도 그 후유증의 처리가 더욱 더 힘들 때도 많다.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은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미해결된 감정’이 그 주범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저항을 하는 스스로를 ‘존재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감정 혹은 행동자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나의 존재가 저항한다는 개념보다는, ‘나의 어떤 감정이 저항을 하고 있구나!’ 라고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미해결된 감정을 해결하면 나의 존재가 다소 편해지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특히 비례적이지 않는 저항은, 우리 생활에서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으로서, ‘핵심역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핵심적으로 작용되는 감정세력’이 그 주범이므로, 그러한 감정을 한발 떨어져 ‘바라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가가 옆에 있다면,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겠지만, 스스로가 해야할 경우에는 늘 ‘바라보는’ 연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라봄은 바로 스스로와의 직면을 매우 너그럽게 하는 작업이지 않겠는가! 무수한 평가와 비판 속에 살아온 우리네가, 직면을 당하는 순간 위축되고 놀라고 충격받기 쉬운데, 그 명약은 바로 ‘자기스스로에 대한 너그러움’이라고 본다. 직면은 ‘있는 그대로 너그럽게 자신을 바라보아 주는 치료적 과정’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일상에서, 이러한 저항감이 올라올 때마다, 자신을 한번 더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연습을 한다면, 아마도 많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때로는 ‘하늘의 뜻’을 알게 해주는 깊은 성찰의 도구로서 사용되어 질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실 그리 완벽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


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