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왜 화가 나는가!!.” (2)

낙산1길 2014. 4. 9. 09:07

 

 

 

 

 

 

 

“이제, 그만 화 내고싶다. 나도 힘들다.” (2)


앞의 글에서 연결

(본문내용)

  화를 제법(!) 자주 내는 사람들은 “이제는 정말 화 그만 내고 싶다. 나도 힘들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정말 그런 말들은 이해되는 말이다. 화를 내는 그 당사자는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는가! 필자도 옛날에는 자주 화를 내는 편이었는데, 그때마다 제일 괴로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뒤에 따르는 죄책감도 커서, 그 죄책감 때문에 또 몇날며칠을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대체로, ‘저 사람 때문에 화가 나 죽겠다.’ 라는 적개심과 ‘나는 이정도 밖에 안된다.’ 라는 죄책감에 왔다 갔다 하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 쉽다. 이렇게 힘들면서까지 화를 내는 원인은 바로 상대방에게 그 탓을 돌리고, 그 몫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포착하여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즉, 외부상황으로 초점을 맞출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다가, 내부의 심리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신비로울 정도로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간은 누구나 다 ‘사랑 인정 존중’의 욕구가 있다. 그 욕구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조용히 그 욕구를 가진 스스로에 대하여 이해해 주어야 한다. 받아들여 수용해 주어야 한다.

  특히 어린시절 건강하게 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였던 사람들은 더욱 더 ‘받고 싶은’ 자기 욕구에 대하여 깊이 이해해야 한다. 충족을 하였던 사람 역시, 그 욕구

  를 더 유지하고 더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 받지 못했을 때 발생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더 받고 싶은’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존중과 인정과 사랑받지 못하는 외부자극’이 들어올 때는 결국 그 욕구에 상처를 받기 쉽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라도 이 욕구의 바램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의 욕구에 대하여 특별히 자신만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그냥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해야 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따지지 말고, 그냥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난과 질책과 자책감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일체 자유로워져야 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한다.’라는 종교적인 혹은 초월적인 가르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생각하면 좋다. 다만, 현재의 우리 모습 그 자체에 대하여 이해하고 수용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자신을 사랑해야, 내적인 힘이 생기고, 그래야 만이 차츰차츰 자신의 성장을 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자신을 너무나 심히 학대하기 쉽다. ‘이러면 안돼. 저러면 안돼. 이래야 해. 저래야 해.’ 등등. 이러한 요구와 압박은 우리의 자율성과 자유감을 많이 상실하게 만들었고, 우리의 창조성과 독특성에 한계를 지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을 기르다보면 그 아이의 기질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창조성을 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는 각자의 주관적인 사고방식으로, 어떤 통제와 한계를 제시하면서 자녀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상실시키면서, 동시에 그 나름의 창조성을 잃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사회성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사회의 기준에 맞는 자아기능을 갖춰야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건강한 자아기능과 아울러, 그 나름의 창의성을 잃지 않는 인격체는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자면, ‘이제 그만 화내고 싶다. 나도 힘들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렇게 화내는 이유를 외부자극에 돌리는 일을 멈추고, 자신 내부와의 만남을 시도해 보자. 그리고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자.

  좋은 일이 있을 때 좋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누구나 다 가능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외부자극이 있을 때 평정된 마음을 가지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럴 때 자신의 내부감정을 잘 포착하고, 그 감정을 읽어내면서 이해하게 되면 표현하기도 수월해 질 것이다.

  예컨대, “당신과 오순도순 이야기나누며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는데... 당신이 그냥 아무 말 없이 TV 보고 있어서, 사실 좀 서운했어요. 그래서 조금 전에 내가 화가 났어요.”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혼자서 이 작업을 하기 힘들 때는, 주변 건강한 분들과 대화하며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서가 아니라, 때론 깊이 침묵하며 상황을 잘 바라보고, 때론 나의 주체성을 드러내어 표현하고 교류하면서 편안해 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즉, 외부자극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나 자신의 몫이다. 그 감정의 주인은 ‘나’이다. 그것은 ‘나’를 새롭게 느끼고 깨닫게 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그만 화 내고 싶은 마음, 힘든 우리의 마음은, 바로 우리를 다시금 새로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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