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는 예술가로서의 자아상을 염두에 두고
'넝마주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 넝마주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정신적 자유로움을 즐기는 자이다.
그는 편안한 잠자리를 갖기 위해
또 따뜻한 수프가 있는 풍성한
식탁을 갖기 위해 시간과
노동을 파는 대신 차라리
길거리에 너부러져
있는 거친
자유를
선택한다.
넝머주이에게 길은 곡 삶의 터전이다.
떠나면 길이 되고 멈추면
집이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마네 자신은
결코 넝마주이처럼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물질주의적인 중산층 집안 출신이었고,
넝마주의는 커녕 차라리 멋쟁이
댄디에 가까웠다.
마네에게 넝마주이는
그저 자유로운 예술가에
대한 은유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니 영등포역에서 보았던
노숙자들도 생각만큼 자유로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도 우두머리가 있는 듯했다.
없는 자들 사이에
서도 권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기차가 도착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
의 그림 '생 라자프 역, 기차' 이 생각난다.
물론 오늘날의 기차는 이 그림 속의 증기
기관차처럼 역 전체를 뿌옇게
증기로 가득 채우면서
극적으로 도착하지는 않는다.
소독차가 지나가듯 아무것도 볼 수 없게
주변을 온통 하얗게 만들어버리는
당신의
증기기관차는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머나먼 세상에서
출발하여 또 다시 알 수 없는 세상 저편으로
사람들을 데려 갈 것만 같다.
이상한 연기에 휩싸여 나타났다가
다시 연기 속으로사라지는 것이다.
이렇듯 그림 속 기차역은 신비감으로 가득차 있다.
이곳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무엇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 것만 같다.
은근히 나도 그 시절 기차역에서처럼
특별한 어떤 것,
이플테면 자유 한 조각 같은 것을
기대하며
기차역에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낼 모레 친구아들래미 결혼식이다.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벌써 기대반 셀렘반이다.
또 얼마나 수다는
떨지 걱정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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