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이야기

'증상’은 마음을 감추는 활동, 그리고 생존의 힘(1)

낙산1길 2014. 11. 8. 05:34

'증상’은 마음을 감추는 활동, 그리고 생존의 힘(1)

 


    
  살아가노라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중요한 대상에 대한 풀리지 않는 감정들이 있을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인격이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지면서 그 감정들이 스스로 해결되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감정들이 더 축적되어 원대상을 보고 싶어하지 않거나, 현실의 다른대상에게 전이되는 것들도 있다.

  혹자는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귀신이요 환(幻)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가슴속에 매듭지어 있는 감정은 자신이 뚜렷이 기억나고 의식되는 것도 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고 완전히 억압되어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의식이 되든 의식이 되지 않든, 풀리지 않은 감정은 우리의 몸이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풀리지 않고 있는 감정들의 여파는 여러 가지 현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꿈으로, 성격으로, 언어적 표현으로, 태도로, 표정으로, 각종 신체화현상으로, 경제사회적 활동으로, 대인관계 방식으로... 다양하게 그 파장들은 이어진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종의 ‘증상’이다.
  

  ‘중상’이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측면의 활동으로 그 마음을 감추며 표출되는 양상을 말한다. 즉, 마음을 감추는 활동이라는 뜻이다.  자기만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사실, 마음을 감추는 활동은 거의 누구나 다 지니고 있다. 과연 어느 누가 외부의 다양한 대상 앞에서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겠는가! 아주 특별하게 성숙한 사람이거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 이외는 누구나 다 비슷할 것이다. 때때로, 이러한 방어본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아붕괴’의 수준에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도 간주된다. 이럴 경우에는 오히려 또 다른 ‘증상’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증상’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승인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누구나 다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감출 수 밖에 없었던 심리적 배경에는, 미움과 분노, 좌절 등의 고통으로 인한 적개심이 많이 억압되어 있고, 그 적개심은 사랑과 의존의 욕구로부터 출발된 것이 대다수이다. 즉, ‘의존적 사랑의 욕구’에 대한 과잉충족과 결핍으로 인한 어떤 감정들의 억압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적개심은 어떤 형식으로든 드러나긴 하지만, 주변대상의 상태에 따라서 감추어 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대상은 한 인간의 생존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자녀가 엄마아빠가 너무 답답하고 싫지만, 그 부모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면, 자신의 생존욕구는 어디서 어떻게 채워야 할 것인지 답이 없다. 제대로 된 감정표현은 허락되지 않고, 바람직한 표현을 배울 모델도 없는 상황에서, 더욱이 그 대상은 나의 생존을 쥐고 있는 중요한 대상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부모에 대한 감정이 자꾸만 답답하고 짜증나고 보고싶지 않을 정도로 싫어진다. 집 안에서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지만, 마주치지 않을 수도 없다. 식탁에서 부모와 마주보고 앉아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고 두근거려지면서, 저절로 손톱을 만지작 거리며 뜯게 되고, 머리카락을 돌돌 말게 된다. 자기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자꾸만 만지고 손톱을 물어뜯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반복되다 보면, 딱히 ‘난 부모가 싫어.!“ 이런 식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부모의 눈을 쳐다보기 어렵고,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중상’만이 있을 뿐이다.

   부모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정말 똑같은 잔소리를... “손! 가만 두지 못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네! 그만큼 하지 마라고 했는데... 밥상머리에 앉아서 머리카락이나 만지고...” 등등의 가차없는 비난과 질책, 무시와 힐난조의 언어매질이 시작된다. 아이는 다시금 부모에 대한 적개심이 누적된다.
  

  이 때, 부모는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 자녀가 이런 증상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 감정을 해소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게 될 때 그 아이는 ‘정신병적’ ‘노이로제적’ ‘신경증적’ 증세를 지니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녀는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하여, 한마디로 ‘생존전략’으로서 그러한 ‘증상’을 가진다는 뜻이다. 자녀가 그러한 증상을 가지지 않았다면, 자기자신이 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방향을 모색할 수 없었으므로, 바로 그 감정으로 인한 정신병적인 증세를 가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겠는가. 어쩌면 증상은 자기 마음을 감추는 활동이면서, 스스로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인간은 생득적으로 자기보존 본능이 있으므로, 누구에게인가 배우지를 않아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동조절기제를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어쩌면 하느님이 ‘증상’이라는 것을 통하여, 그 아이를 보호해주려는 뜻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증상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며, 그것을 어떻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도와줄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모교 교수님의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