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어야 하는 습관적인 장막 (1)
심리치료의 첫 장면은 내담자들이 도움받고 싶은 '주호소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스타일은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성향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다. 돌직구를 날리듯 바로 '어떠어떠한 문제가 있어서 왔는데, 이러이러한 도움을 받으러 왔어요!' 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빙빙 주변 이야기를 하면서 매우 긴 서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상대방의 문제가 이러이러합니다. 저는 그 원인도 다 알고 있어요. 상대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는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 저는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오직 선생님만 믿고 그냥 왔어요~' 라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질문하면서 그 원인을 꼼꼼하게 묻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이 북받혀서 사실적인 정보를 말하기도 전에 계속 울기만 한다거나 감정만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그 어떤 경우이든, 상담자는 내담자가 가져온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통하여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며, 인과관계를 깨닫도록 도와주면서, 서로 협조하고 논의하며 해결책을 강구하고, 연습시켜 나간다.
이런 과정에서, 내담자의 '도움을 받는 양식'이 도움을 받기가 곤란한 경우가 더러 있다. 일종의 장막이다. 의식적으로는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화된 패턴이 ‘도움받고 싶은 마음’을 가로막는 장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장막을 치면서 나올 경우에는, 일반사람들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상담자들도 이러한 것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다고 하더라도 그 장막을 뚫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매우 뿌리깊은 습관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 타고난 기질에 의하여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접근하는 태도, 도움받는 태도 등...다양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것은 다소 의도적으로 경계하고 고민하여 나오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가 어떤 의도를 가지지 않고도 전자동적으로 행하는 하나의 패턴일 가능성도 많다. 의도를 가졌을 경우에는 상담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그 의도를 풀어헤쳐서 이해받고 수용받으면서 도움받을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된 패턴은 상담자가 아무리 이런저런 질문과 표현으로 도와주려고 하여도, 더 이상 대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정글인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것은 자라온 과정에서 거의 학습된 양식일 수도 있으며, 학습되지 않아도 선천적인 성향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행하여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자라온 과정에서 학습된 것이든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든, 그러한 패턴은 거의 조건화된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패턴은 한 인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스스로의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그 힘 때문에 자신이 이루어놓은 성과물이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 성과물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이것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혹여나 어떤 이유로 성과물이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스스로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자책감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지금까지의 패턴을 더욱 더 열심히(!) 사용하여 뭔가를 이루려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예컨대 '책'을 즐기고, '지식'을 흡수하여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패턴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사람에게 '너는 그것이 문제야. 책 그만 읽어라. 정보를 그만 검색해. 지식을 흡수하는 것은 잘못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스스로도 이런 형태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것이다. 오히려 이런 성격을 가진 자식을 둔 부모에게는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해서 좋겠다. 나도 그런 자식을 좀 키워봤으면 좋겠다.'라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이러한 조건화된 패턴은 그것자체가 '생존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힘들고 괴롭고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지식'을 통하여,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즉, '더 알아서...' '원인을 더욱 더 잘 분석하여... ' '내가 몰랐던 것을 더욱 더 캐내어...' 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무엇인가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기도 한다.
그 양식은, 자신에게 삶의 중요한 힘이 되어 왔기 때문에 본인스스로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살아오면서 그 양식으로 생존해 왔을 경우에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불안할 수 있다. 내면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유일한 방법으로 '더 알아내어, 더 잘 분석하여' 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현실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내면의 불안을 해소해 주는 방법으로 사용한 '지식탐구' ‘정보검색’이, 심리적인 방어역할을 하며 때로는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_모교 교수님의 카페에서_
(다음 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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