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통합시키는 것
*이 글은 심리학과 ‘영성’을 통합시키려는 W. Au &N. Cannon (1995) 신부님의 글들이 인용되어, 이해하기 쉽게 다시 재구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집단’모임은, 바로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그 그림자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드러나는 것과 숨어있는 그림자를 통합시켜서 자기 자신을 느끼는... 바로 그것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 그것이 어둡고 부정적이고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자체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을 기르는 場이다. 善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그림자를 제대로 직면함으로써 건강하고 생산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융을 따르는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열등하고 어두운 면들을 다른 사람이나 이데올로기나 다른 원인에 투사시키려는 무의식적인 필요성에서 벗어나, 심리적으로 이것에 전염(=전이)되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림자를 구원하는 것은 영성적 삶에 심오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부끄럽게 하는 것을 바라보고 처음에 자신을 거부하게 만들었던 고통을 알게 될 때, 하느님의 치유 은총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빛이든 그림자이든)을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느님께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할 필요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상처받은 부분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충분히 인식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의 어두운 면을 포함한 모든 면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사랑과 연민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내면에 있는 독선과 비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한때 우리의 것이었던 360도 인격의 온전함을 다시 추구하는, 기념비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자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 적게 두려워하고 더 적게 방어적이 된다. 참된 자기인식은 기본적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안전성과 자기확신을 주고, 다른 이들이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우리를 우리 자신이 되게 한다. 그림자를 통합시키는 것은 우리 존재를 확장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고, 우리를 전적으로 인간적으로 살아 있게 만든다. 우리 몸도 역시 그림자에서 이익을 얻는다. 만성적인 신체적 긴장과 육체적 불쾌감들은 억압된 에너지들이 표면에 나오고 건설적인 출구들을 제공받을 때 줄어들게 된다. 억압된 에너지들의 건강한 출구는 바로 건강한 마음 다스리기와 대처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 그 그림자를 방어하고 억압시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점점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고 무력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 것이다. 그림자에 묶여 있던 창조적인 에너지들이 우리에게 유용하게 될 때, 놀랍게도 우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삶에 대한 가능성과 열정을 더 많이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림자를 통합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충만한 한 인격이 되는 길인데, 이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면서 원하신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궁극적인 우리 본성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더욱 충만한 인격이 되려고 노력하려면, 우리는 자신에게서 그림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고, 오히려 그 그림자에게 우리 정체성의 한 자리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림자를 전적으로 통합시킬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는, 즉 수용하면서 성장하여야 한다. 사실상 그림자를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림자의 결핍으로 더욱 빈약해진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우리의 인격은 뭔가 결함이 있으며, 공허하고 지루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자에 의해 부유해진다. 즉 그림자는 우리를 흥미있는 존재로 만들고, 우리에게 심오함과 개성을 부여하며, 정체성에 대한 감각을 강화시킨다.
자신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 적게 두려워하고 더 적게 방어적이 된다. 참된 자기인식은 기본적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안전성과 자기확신을 주고, 다른 이들이 반대하는 것을 무릅쓰고 우리를 우리 자신이 되게 한다. 그림자를 통합시키는 것은 우리 존재를 확장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고, 우리를 전적으로 인간적으로 살아 있게 만든다. 우리 몸도 역시 그림자에서 이익을 얻는다. 만성적인 신체적 긴장과 육체적 불쾌감들은 억압된 에너지들이 표면에 나오고 건설적인 출구들을 제공받을 때 줄어들게 된다. 억압된 에너지들의 건강한 출구는 바로 건강한 마음 다스리기와 대처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 그 그림자를 방어하고 억압시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점점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고 무력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 것이다. 그림자에 묶여 있던 창조적인 에너지들이 우리에게 유용하게 될 때, 놀랍게도 우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삶에 대한 가능성과 열정을 더 많이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림자를 구원하는 것은 영성적 삶에 심오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부끄럽게 하는 것을 바라보고 처음에 자신을 거부하게 만들었던 고통을 알게 될 때, 하느님의 치유 은총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빛이든 그림자이든)을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느님께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할 필요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상처받은 부분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충분히 인식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의 어두운 면을 포함한 모든 면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사랑과 연민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내면에 있는 독선과 비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한때 우리의 것이었던 360도 인격의 온전함을 다시 추구하는, 기념비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善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그림자를 제대로 직면함으로써 건강하고 생산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융을 따르는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열등하고 어두운 면들을 다른 사람이나 이데올로기나 다른 원인에 투사시키려는 무의식적인 필요성에서 벗어나, 심리적으로 이것에 전염(=전이)되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집단’모임은, 바로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그 그림자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드러나는 것과 숨어있는 그림자를 통합시켜서 자기 자신을 느끼는... 바로 그것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 그것이 어둡고 부정적이고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자체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을 기르는 場이다.
*이 글은 심리학과 ‘영성’을 통합시키려는 W. Au &N. Cannon (1995) 신부님의 글들이 인용되어, 이해하기 쉽게 다시 재구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사랑하는교수님 방에서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