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창밖을 구경하는 여행객일 뿐...

어느 시인은 세상 모든 꽃은 흔들리며 핀다고 했다. 햇볕도 받지만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꽃이 핀다. 동물들은 먹이 때문에 쫒기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하면서 갓난이에서 어른으로 변모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처 받고 화가 나며 죄책감을 느끼고 유혹에 흔들리면서, 인생의 꽃을 피워 간다. 이러한 과정없이는 제대로 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온실에서 예쁘게 핀 꽃도 있겠지만, 역시 생명력은 노지에서 핀 꽃에 비하랴! 바람맞고 흔들리며 큰 사람은, 그 마음 밭도 강하다. 어쩌면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많은 사랑을 갈구했었고 더 큰 상처와 흔들림 안에서 눈물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냈을 것이다.
물론 꽃 중에는, 아예 피우지를 못하고 피다가 말고 밟혀서 죽은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죽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죽음은 땅 속에서 새로운 씨앗의 생명력으로 재탄생되지 않았겠는가! 그런 상태로 땅속의 비료가 되어 다른 꽃들을 피우게끔 거름을 제공했을 것이다. 즉 밟혀 죽은 듯이 보이는 주검은, 어쩌면 또 다른 생명체로 환생되어 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의 생명상태이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외부의 조건을 포용하고 맞닥뜨리고, 때론 순응하며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생명을 묵묵히 지켜낸 결과라고 본다.
큰 사랑의 꽃이든, 큰 성공의 꽃이든... 꽃을 잘 피운 사람들은, 외부의 흔들림에 투쟁하거나 도피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지혜롭게 이겨낸 사람들이다.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상처와 흔들림 속에서, 그것 자체와 함께 어울리며 고심하였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생각보다 약하다. 부모가 겉은 강하게 보여도, 자식 앞에서 괴로워하며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누구나 다 비슷하다. 겉은 당당하게 보여도, 외부의 작은 말 한마디에 삐지고 상처받고, 기뻐서 좋아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한계와 흔들림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로 죄와 유혹 앞에 흔들리는 한계 많은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영혼 구원의 첫 번째 조건이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우리는 쉽게 흔들린다. 우리는 쉽게 무너진다. 우리는 쉽게 아파한다. 우리는 쉽게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정말이지 우리는 생각보다 약하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하고, 차분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인정으로부터 모든 것은 출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그 부분을 느껴야 하며, 이 사실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이것은 외부의 흔들림에 대하여 쓸데없이 투쟁적으로 맞서거나, 멀리 도망가는 비겁한 나로 만들지 않게 하는, 최대의 명약이라 본다. 우리에게 닥친 외압을 그대로 직면하면서 머무르면서 넘어서는 것,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삶의 방식이다. 타협할 것은 타협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미안한 것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곤란한 것은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하고, 힘든 것은 힘들다고 양해를 구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반응해주고, 상대의 공격성에는 나의 존재를 드러내어 방어하고 보호하고, 때론 진실을 주장하고 설득하고 조언이나 충고를 하면서 등등, 건강한 대처양식을 통하여, 우리는 외부의 것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즉 그들과 함께, 그들에 의해서, 그들을 통하여, 우리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과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것을 피해서는 안된다. 불필요하게 싸움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것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직면하면서 융화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자신이 굳게 옳다고 주장했던 사안들이, 불과 1년 후에는 다른 각도로 비춰져서 옳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굳게 생각했던 것들이, 불과 몇 개월 후에는 ‘뭐... 그럴 수도 있는 것이네. 나도 마찬가지인 걸... ’이라고 생각되어 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고정시켜 볼 필요가 없다. 지금 현재의 것들이 평생 갈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현재 내가 보는 대상이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라는 고착적 관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단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금 여기에서의 외부의 것들과 사랑하며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외부의 것들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들이다. 즉 함께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승객들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열차의 승객.... 거대한 기차를 탄 여행자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긴 열차 안에서 티켓에 적힌 좌석표에 따라 주어진 자리에 앉아가는 여행객이다. 일단 티켓을 가지고 탄 우리는, 직접 운전하지는 않는다. ‘나’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는 따로 있다는 사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단지, 그 운전자를 믿는 것이다. 믿지 못하면 그 열차를 아예 타지를 말았어야 했다. 아니, 믿음은 아예 개인적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그냥 자동적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일부러 의지를 낸 것도 없이, 늘 그래왔듯, 당연히 믿고 열차를 탄 것이다. 그 열차의 운전기사님을 의식하고 의심해 본적이 별로 없다. 그냥 탄 것이다. 늘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열차... 우리는 그 운전자가 누구인지를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나이도 모르고 성별도 모르고...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냥 믿은 것이다. 그냥... 이유가 없다. 단지, 인생이라는 열차를 타고, 우리는 여행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 믿음을 통해서... 왜 믿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이 그냥 믿게 된 것을 통하여 여행하는 것이다. 간혹 열차가 약간 이상이 있고 흔들리면, 우리는 당황한다. 그것도 우리의 영역밖이라서 큰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은 잠시 당황할 뿐이다. ‘아... 왜 이러지?! 무슨 일이 있는걸까?’ 하면서... 그러나, 열차가 다시 정상으로 가면, 또 잊는다. 당연히 그 열차는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 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티켓을 가졌다는 사실 뿐,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바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약간 흔들리는 것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바람이 부는 창밖을 구경하는 여행객일 뿐이다. 그냥 잠깐 스쳐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티켓을 가지고 있는 여행자로서, 열차를 탈 권리를 가진 승객일 뿐이다. 승객으로서의 자유와 권리 등을 자연스럽게 가지는 것이다. 승객이기 때문에 열차 안에서는 화장실도 가고 움직이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TV 화면도 보고, 옆사람과 이야기도 조용하게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책도 보고, 바깥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때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그 열차 안에서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은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큰 열차를 탄 우리는, 이미 태어난 존재자체가 바로 티켓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늘 그래왔듯이 그냥 믿고 타는 것이다. 그 운전자가 누군지를 몰라도 그냥 믿고 여행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여행.... 하느님이라는 큰 운전자는, 칸칸이 들어있는 티켓의 주인들을 잘 모시고,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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