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1길 2013. 5. 20. 16:36

하느님이시라면, 나의 문제를 어떻게 치료하실까! (4)

 


 

 

 


토마스 키팅은 이렇게 자신을 맡겨 드리는 것을 가리켜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에 동의한다.” 하고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거룩한 치유자(Divine Theraphist)라고 부른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관상기도라고 말한다. 이 기도는, 바로 하느님의 치료과정에 자신을 맡겨 드리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들, 즉 고정관념, 거짓 자아, 방어기제, 무의식적인 이기적 동기들, 그리고 일생동안 받았던 정서적 상처들을 말끔히 치유해 주시기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상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게 하시고,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되도록(즉 변형되도록) 수련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도하는 이유인 것이다.

만일 우리 내면의 병적인 요인을 진정 인정하고, 마음 속의 어두움을 인정하지 않고 여정을 시작한 사람이 아주 진지하게 이 여정에 들고, 하느님께 자신을 맡겨 드리면, 하느님은 적당한 때에 이러한 자신의 결함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시며 이러한 어두운 면에서 해방되는 길도 열어 주신다. ‘구하면 모든 것이 열릴 것이다.’ 라는 단언으로서 믿음을 촉구하신다. 그 이유는, 이러한 어두운 면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여정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어두운 밤’ 이라고 표현한 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정화(purification 혹은 purgation) 해 주시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의 영혼이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종교의 여부를 떠나, 누구나 관상을 해야 하는 이유는 관상을 통하여 우리는 정화되며, 그 정화 없이는 결코 거짓자아에서 해방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 여정이란 바로 이러한 정화의 여정이다. 옛날에는 이러한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수도생활을 극기와 고행의 생활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기도 중에 떠오르는 자신의 영적 결함에 대하여 그 역동(dynamics)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를 죄의 근원으로 보고 자신을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정화를 하려는 경향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영적 결함에 대하여 깊은 회개와 보속으로 갚으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영적 결함의 뿌리, 즉 원죄의 뿌리는 정서적 판단과 이기적인 동기로 인간의 무의식 속에 깊이 저장되어 있어서 자신의 이기적인 동기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이해 없이는 정화 대신 고행의 연속일 뿐이었다고 한다. 즉 겉으로 일어나는 분노, 탐욕, 교만, 질투, 나태, 육욕, 허영 등의 감정들의 뿌리는 고행으로 하는 보속만으로는 정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것만으로는 정화되지 않으며 그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병의 증세보다는 병의 근원 자체를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상기도로 하는 이 정화과정 또는 치유과정은 병의 근원의 치유, 죄의 뿌리를 정화하는 과정이며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보다는 하느님께서 해주실 때에 더 잘 이루어진다.
                                                                                              저희 모교 교수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