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 뒤의 마음
우리는 할 말이 없거나,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때 그냥 웃음으로 넘기는 사람을 종종 본다. 슬퍼도 웃고, 당황스러워도 웃고, 어색해도 웃고, 부끄러워도 웃고, 미안해서 웃고, 심지어 미워도 웃는다. 웃음치료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웃음 그 자체는 좋은 정도를 넘어서 치료적으로 쓰일 정도로 유익한 것이라고 본다. 활짝 웃고 난 뒤의 개운함과 건강한 에너지는 우리의 몸에도 좋을 것이다. 행복한 미소나 흔쾌하게 마음껏 내지르는 함박웃음은, 그 웃음자체가 주는 기운이 묘약같은 것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속 마음과 겉 웃음이 일치되지 않을 때는 어떠한가! 어색하고 이상하여 때로는 진실되게 보이지 않는 등,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웃음으로 자기 상태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웃고 싶어 웃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 마음을 웃음으로 그냥 넘길 수 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웃음 뒤의 마음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도 자기 마음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면에서 뭔지 모르는 감정이 올라오니까 그냥 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은 우선 자신의 마음이 슬픈지, 당황스러운지, 부끄러운지, 화가 나는지에 대하여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알아차림’이 안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기 마음은 정확하게 모른다고 느끼지만, 이미 자신의 몸의 감각은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고, 무엇인가 움직이는 내면이 있기 때문에 인상으로 얼굴색깔로 태도로 행동 등으로, 어떤 방향의 표정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슬픈 것을 안다면 ‘내 마음이 슬프다’라고 할 수 있지만, 아예 슬픈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자신스스로를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알아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드러내기가 어려운데, 아예 잘 모르는 자기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냥 웃을 뿐이지 다른 별도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웃음으로 오해를 많이 받을 수가 있지만, 웃는 그 자신도 그러고 싶어서 웃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되었고,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도 아예 몰랐고, 표현하였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를 초래하였을 경우에는 감정을 억압해 버렸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마음이다. 억압된 감정은 여러 가지 형태로 그 증상을 드러내는데, 웃음도 하나의 증상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억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웃음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일 뿐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통찰을 스스로 해 나가면서, 과거에는 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웃음이라는 것을 통하여 나를 지켜왔지만, 현재는 건강한 의사표현과 진실된 웃음으로 지금 이 자리에 비례적인 대응방식을 연구해 본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웃는 내 마음도 편하고, 웃는 모습을 보는 상대방도 편하게 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자기 감정을 알고는 있지만, 그냥 적당하게 웃음으로 자기 마음을 방어하면서 드러내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당신의 그런 말을 들으니 답답하고 조금 짜증이 난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하자.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상대방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다. ‘뭘 그런 소리를 해, 그냥 참지!’ 라고 상대방 혹은 스스로를 핀잔하는 마음도 올라오면서, 동시에 자꾸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태도는 답답해지고, 언어적인 표현은 하지 못한 채 서서히 어색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 경우 역시,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눈치를 상당히 많이 보기 때문에, 적당히 웃음으로 갈무리하여 피하는 셈이 된다. 특히 자라온 가정의 분위기가 이런 감정표현을 서스럼없이 하면서 수용해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자신의 감정은 이미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솔직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새로운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의 웃음은 상대방에게 금방 들통(!)나기 쉽고, 진실된 인간관계를 맺는데 부적절하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오히려 문제를 더 증폭시키는 꼴이 될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새롭게 연습하면서 자연스러운 정서교류를 하게 될 때, 그 웃음은 비로소 진실되게 나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전달될 것이다.
위의 두 경우를 정리해 보면, 첫 번째 경우는 감정을 아예 자각하지 못하고 웃음이 나오지만, 두 번째 경우는 자각을 하면서 웃음으로 대치되는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남에게 상처주고 괴롭히는 형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웃움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꼭 된다고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때로는 권위가 떨어지고 불필요한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윗사람으로서의 역할이나 인간관계에서의 정서교류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번쯤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본인 스스로가 이런 점을 깨닫고 고쳐보려는 의식적 노력을 한다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빠르게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감정을 못느끼고 웃음으로 대치되는 경우 보다, 감정은 느끼지만 방어하기 위하여 웃음으로 대치되는 것이 자기 극복에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후자는 이미 억압되지 않고 의식되는 선상이며, 전자는 억압되어 있으므로 의식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어떤 감정이라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자아탐구를 통한 자기와의 만남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어느 쪽이든, 즉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든 의식하든, 적당히 얼버무려서 웃음으로 대치하는 것을 보면, 상대방입장에서 다소 어색하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이와같은 비례적이지 않는 웃음으로 관계를 하는 분들을 보라!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면, 실없는 웃음이 나오지 않고, 진실되고 진지하고 따뜻한 가슴이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냥 대충 적당히 나오는 웃음으로 인하여 상당한 오해를 받고 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나의 얘기를 듣고 저렇게 비웃다니!’ ‘저 사람 왜 웃는거야? 웃을 일도 아닌데, 사람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무시하는 것 같애!’ ‘아니, 사람 이야기를 듣고 웃을일도 아닌데 왜 웃어? 정말 기분 나쁘데. 이건 아무래도 나를 깔보는 것 맞아!’ 라는 식의 부정적인 감정 혹은 일방적으로 잘못 판단해 버리게 되면, 훗날 인간관계 갈등의 불씨를 남길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왜곡하여 판단하는 쪽의 ‘몫’이 있겠지만, 나의 웃음이 이렇게 상대방에게 왜곡되게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상대를 나무라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그냥 알리는 것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시키는 등, 모두 상대방에게로 전이시키기 때문에 감정표현 그 자체가 바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 그냥 자신의 본마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러이러하게 된 것은 당신 탓이다!’ 라는 식으로 전달되는 의사표현이 가장 문제인 것이다.
의사소통의 미숙함과 감정표현의 부재라는 문화권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나의 존재, 즉 나의 마음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 자신의 본마음(표면적인 감정을 일으킨 내면의 깊은 본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더욱 더 쉽지 않다. 특히 상대방을 불편하게 혹은 상처주는 식으로 되지 않으면서 나를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 녹녹치는 않다. 그러나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고 하여 우리는 상대를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평가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면, 결국은 ‘사랑’과 ‘관심’으로 서로를 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본마음을 잘 포착하여, 진실된 감정만 표현할 수 있다면 걱정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오랜 세월동안의 습관으로 인하여 그런 본마음을 부정적인 의사소통으로 하여 왔기 때문에, 그 습관을 바꾸기란 그리 쉽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좋은 감정’보다는 ‘나쁜 감정’을 ‘감정’으로 인식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감정자체를 터부시하고 거부감을 느끼며 살아온 것이다. 하물며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러한 정서교류의 건강함 여부가 가장 큰 과제인 것이다.
감정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관심주고 관심받고, 서로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고, 위로받는 등’ 각종 긍정적인 힘을 쏟아낼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라고 본다. 이렇게 좋은 감정은 그 어떤 양식보다는 좋은 에너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감정을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것은 정말 오해이다. 그 에너지를 전부 마이너스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삶의 오해’이다.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감정표현은, 자신스스로도 개운하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제대로 된 감정표현을 통하여 웃음으로 얼버무리지 않고, 내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미숙한 감정처리 방식의 일환으로 사용되어 온 ‘웃음 뒤의 마음’을 잘 알아차려서, 자신도 타인에게도 ‘진정한 웃음’이 전해지면 좋을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있듯이, 싸우고 인상쓰는 것 보다는 웃음이 훨씬 더 좋은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하물며 건강한 웃음으로 서로 교류하며 살아 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다.
모교교수님의 방에서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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