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이야기

당당한 사람은

낙산1길 2015. 8. 7. 14:55

당당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



  우리 모두는 누구나 다 당당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진 것도 남보다 부족한 것 같고, 배운 것도 그리 대단하지 않는 것 같고, 외모도 별로 잘생긴 것 같지도 않고, 내세울 것도 그리 많지 않는 것 같은 이유 등으로 당당하지 못하다. 또한 가진 것이 많지만 내세우려니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고, 분명히 난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잘난 척 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드러내기가 다소 껄끄럽고, 그것을 뽐내려니 남들이 유치하다고 할 것 같고, ‘내가 이런 사람이요!’ 라고 명함을 내 보이고 싶은데 미성숙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은 이유 등으로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당당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남들의 잘난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얄밉기도 하고, 나도 가졌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도 있다보니 시기와 질투심이 올라오기도 하는 등 마음이 복잡하다. 때로는 ‘과연 제대로 된 경로를 통해서 저런 것을 가졌을까?’ 하는 불신감마저 생기고,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뭔가 부족한 것도 있을 거야!’ 라는 의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고, 위축되고 부담스럽고 자책이 되기도 하는 등, 각종 심리적 현상으로 불편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또한, 자기가 가진 것을 자꾸만 자랑하고 싶고, 남들이 내가 말 하지 않아도 알아주었으면 싶고, ‘왜 저런 것도 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때문에 무시하고 경시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뭘 저런 것을 가지고 자랑할까?’ 싶어서 인정해 주고 싶지 않고, ‘내가 당신보다 훨씬 우월해!’ 라고 말해 주고 싶고,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과 다름없는 인간이 될 것 같아서 참으려니 다시는 그 사람 만나기도 싫고 등등,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고, 주체성을 상실하는 삶을 살아왔을 수 있다. 모든 인격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가진 각종 날개의 인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인자가 잘 자랐을 경우에는 날개가 자신의 빛깔과 크기를 한껏 발현되도록 키워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날개는 펼쳐져서 나름대로의 세상으로 날게 될 것이다. 정말 당당하게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하늘높이 비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날개를 가지고 있되, 마치 날개가 없는 것 처럼 꺾인 인생을 산 사람들은 스스로 위축되고 부러진 것 처럼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컨대, 독수리의 알이 어쩌다 닭장 속에 떨어져 닭이 그 알을 품은 후  독수리아기가 태어났다고 하자. 그 독수리아기는 닭이 자기 어미인줄 알고 어미를 따라 아장아장 걷고 어미의 방식대로 조금씩만 날고 어미의 방법대로 먹이를 주워먹는 등, 각종 생활방식을 배우게 될 것이다. 어느날 우연히 쳐다본 하늘에 몇 마리의 독수리가 높이 날고 있는 것을 볼 때, ‘아... 저렇게 나는 새들도 있구나! 나도 그렇게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그런 독수리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살 것이다. 아예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듯 체념하고, 하늘높이 비상하는 독수리를 쳐다보게 될 것이다.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구경하듯 바라보게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독수리가 어른이 되어, 닭처럼 생활을 하지만 한번쯤 마치 자신이 독수리인 것처럼(!) 날아보기를 시도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청천벽력과 같은 놀라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 내가 날 수 있다니! 내가 독수리처럼 날 수 있다니... 아니, 내가 독수리라니!’


  우리는 누구나 다 우리의 내면에 무한히 잠재되어 있는 독수리와 같은 날개가 있다. 당당함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닭은 닭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그 당당함을 드러낼 수 있다. 독수리는 독수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당당함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 자신의 날개의 능력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깨닫고, 수용하고, 당당하게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개념을 다시한번 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당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당당하다는 말일까!

  내가 없는 것을 타인이 나에게 제공할 때, ‘아… 감사하구나. 감사하게 잘 받겠다.’ 하면서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을, ‘내가 이런 것을 받아야 되나? 받아야 하다니,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되겠나!’ 라는 마음이 생기면 당당하지 못한 것 같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것을 상대방이 지니고 있으면, ‘와, 정말 보기 좋다. 참 훌륭하구나! 저 사람은 많은 능력이 있어서 사회를 위하여 좋은 사람이 되겠구나!’ 하면 좋은데, ‘나는 이것밖에 되지 않구나! 저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서 그렇겠지. 저 사람도 어떤 흠이 반드시 있을 거야. 반드시 저런 사람은 문제있어! 자기라고 뭐 별것 있겠어?’ 라는 ‘상대방 끌어내리기’를 한다면 그  역시 당당하지 못한 태도일 것이다.


   나보다 덜 가지고 덜 배운 사람과 접촉했을 때, ‘음, 저 사람은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있구나.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 아! 저 사람은 저렇게 말을 하는 스타일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그냥 상대방에게 편하게 느낄 수 있는데, ‘저 사람은 불쌍하다! 딱하다. 가치없는 저 태도! 저 말씨! 저것 밖에 안되니까 저렇게 살지!’ 혹은 ‘아예 상종을 하지 말아야겠군!’ 이라고 생각한다면, 당당하지 못한 태도라고 본다.


  굽신굽신 하면서 걸식을 해도, ‘참 감사하게 잘 먹겠습니다.’ ‘나의 걸식을 통해서 상대방이 공덕을 쌓게도 되고, 나도 얻어먹을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걸식을 해도 당당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부자로 살 수 있게 된다면 ‘부자든 가난한 것이든 아무 차이가 없어. 그냥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돈이 많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어. 그 부는 하늘이 내려준 것을 잠시 관리하는 것일 뿐, 진정한 내 것이 아닐진대, 부자라고 할 것도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데 사용해야지!’ 라는 태도를 가진다면 죄책감 없이 진정한 부를 가진 당당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당당한 사람은 남의 것의 유무에 끄달리지 않고, 자신의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당당한 사람은 남의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거나 시기하거나 모함할 일이 없다.

  당당한 사람은 외부의 것에 내 것이 위협당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의 것이 어떻게 변하든 마음의 평정심을 별로 잃지 않는다.

  당당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이 많아도 그것이 자기만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자랑하거나 내세우려는 마음자체가 거의 없다.

  당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별로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상대방의 말로 인하여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당당한 사람은 자기가 바로 서 있되, 자기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당당한 사람은 자기주체성이 있으면서도, 남의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다.

  당당한 사람은 자기 것을 잃지 않으면서도, 남의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

  당당한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그 누군가에게 무조건 집착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한다.

  당당한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챙긴다.

  당당한 사람은 삶의 과정이 ‘채움’에 있지 않고, ‘비움’에 있다.

  당당한 사람은 삶의 종착역이 ‘있는 것이 없어짐’에 있지 않고, ‘본래 없음’에 있다.

  당당한 사람은 인간의 뜻 위에 하늘의 뜻을 두는 겸손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