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고 머무르고 넘어서고 (1)

상담 및 심리치료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정신역동적 접근’의 교육프로그램을 (부모교육, 상담자교육, 기타 각종 특강프로그램 등) 처음 접했을 때 공통적으로 배우게 되는 내용이 있다. ‘정신역동’이란 개념이 무엇이며, 그 정신역동이 어떠한 심리적 현상으로서 현실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으며, 그로 인한 자동화된 감정 및 행동패턴이 무엇이며, 그런 패턴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발전 혹은 극복되어야 하는가 등등, 다양한 내용을 학습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 이렇게 되어서 저렇게 되었구나! 앞으로 이런 부분을 고려해 보아야겠구나. 저런 행동이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되었구나. 따라서 이러이러한 방법을 연습하면 되는구나!’ 등등, 다양한 통찰insight 작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작업을 인지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을 흔히 ‘지적知的통찰(intelligence insight)’이라고 한다. 단시간의 특강 혹은 워크샵을 통해서도 도움받지만, 체계적인 단계별 교육프로그램은 이와같은 지적통찰의 향상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지적통찰이 인식의 범위안에서 자신을 알아차려 나가는 한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은 한 개인의 감정적 성숙에 꼭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본다. 즉,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개념들을 알게 되면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바뀌어야 할 과제를 자각하게 되고, 살아온 습관대로 아무런 생각없이 살다가 뭔가 새로운 방향에 눈이 뜨이기도 한다. 즉시적으로 행동이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였고 어떤 상황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범위가 확대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조건화된 생활패턴에 경종을 울리기도 하기 때문에, 예상치 않게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풀려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길에 대한 인식이 일어나면 바로 어떤 행동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행동은 예전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점이 온다. 그러면서 차차 다른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 이제 뭔가는 좀 알겠다. 그런데 나의 행동은 고쳐지질 않는데, 왜 그럴까!’ ‘지금까지 내가 안다고 느꼈던 점들이 과연 제대로 안 것이었을까!’ ‘하기야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변할리는 없지. 그리고 오랫동안의 습관적인 것이 있으니까 쉽진 않겠지. 하여튼, 알긴 알겠는데 뭔가 잘 안 되는데, 좀 막막하다.’ 등등의 생각이나 느낌이 들 수 있다. 이런 의구심은 참 소중한 변화의 조짐이며, 마땅히 느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지적 통찰의 과정은 행동변화에 상당한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다. 지적 통찰은 분명히 그 자체만으로도 도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한계를 가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많은 상담전공자들이 어느 수준에서 ‘성장’이 멈추면서 더 이상 ‘내담자’를 대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많은 이론학습과 강의내용을 접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혀졌지만, 그것이 지적 통찰의 수준에서 머물기 쉽다. 그러다보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반복적인 느낌이 들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는 정도는 상담자 자신의 심리정도에 비례되기 쉽다는 뜻이다. 따라서 내담자의 깊은 차원의 심리치료 혹은 성장욕구를 함께 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적통찰을 넘어서 상담자(혹은 부모)의 더 깊은 통찰과 행동변화의 경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머리로 알게 된 지적 통찰 경험은 현실적으로 통합되면서 내담자(혹은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 성장은, 머리로 하는 과정에서 가슴으로 하는 과정으로 넘어가야 한다. 즉, 머리로 느꼈던 부분들이 가슴으로 절절히 들어와야 한다. ‘외로웠구나!’ 라는 머리로의 인식에서, ‘너무 외로워서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이정도로 외로웠지!’ 이런 감정을 가슴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과정을 말한다. 글로 표현하기는 좀 어렵지만, 이 과정을 잘 겪게 되면 가슴으로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머무름을 통하여 현실적인 ‘나’ ‘상대방’ ‘상황’ 등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그 ‘바라봄’을 통하여 변화의 물꼬가 트이는 깨달음이 진정한 통찰인 것이다. 이것을 ‘정서적情緖的통찰(emotional insight)’이라고 한다. 심리관련 교육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학습은 지적 통찰에서 정서적 통찰로의 이동이 핵심이다. 이 통찰의 수준을 높이게 되면 현실판단을 건강하게 하는 자이기능의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차차 성숙된 인격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다.
정서적 통찰을 위한 치료적 작업을 ‘심리치료’ 과정이라고 하며,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개인 심리치료’, 소집단(15-20명 정도) 형태로 하는 것을 ‘집단 심리치료’라고 한다. ‘동방’ 등 각 심리치료 연구단체에서 이루어지는 단계별(미경험자반, 경험자반, 다경험자반) ‘집단심리치료’의 과정은, 한마디로 ‘정서적 통찰’을 위한 장場인 것이다. 이 장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집단원 상호간의 신뢰감이 쌓이면서, 병리적 방어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게 된다. 자기방어의 둑이 점점 허물어지면서 본마음을 표현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현실적인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다루게 되고, 합리적인 판단과 건강한 행동방침이 표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만약 스스로의 내면 성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마침내 무의식에 대량으로 잠겨있었던 많은 부분들을 차츰차츰 이해하고 수용하고 직면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숨겨진 자신을 더욱더 이해하게 되고, 정서적 재경험 (마치 과거의 감정을 현재에서 생생히 느끼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행동의 교정작업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면 현실의 모든 상황들을 점점 성숙한 시각으로 보게 되고 지혜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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