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이야기

한발 떨어져 느껴야 하는 가족

낙산1길 2015. 5. 6. 06:00

 

한발 떨어져 느껴야 하는 가족

향기가 백리간다는 백리향

  약간 안면이 있는 정도의 관계인, 40대 중반의 어느 부인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어머니의 삶은 외롭고 힘들었지만 잘 살아왔습니다. 아버지의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힘겨운 현실을 개척하고 어려움을 견디어 내었으며, 우리를 먹이고 공부시켰습니다. 난 자라면서 오직 우리 엄마를 닮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건 지금까지 한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아... 그러신가요. 그런데 지금 그 이야기를 하시는 무슨 현실적 이유가 있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 때는 그 의도와 배경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인사나 중요한 말을 건네기 위한 전초전으로 날씨나 뉴스거리를 건네면서 대화를 시도할 수는 있으나,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것을 꺼집어 낼 때에는, 그 대상은 현재의 자신의 상태에 중요한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아... 그건, 제가 지금 참 힘들고 괴로운데...” 말을 잇지도 못하고 벌써 목이 메이고 가슴이 먹먹하여 더 이상 어떤 말을 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어쩌면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의 감정들이 소용돌이 쳤을 것이다. 조금 기다렸다.

  스스로 말문을 열기 까지는. 약간 가라앉은 듯 “남편 때문에 참 힘들어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무슨 조그만 사업을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 저는 그것이 상당히 불안해요. 사실 이 사람은 회사 다닐 때도 집에 돈을 잘 가져오지를 않았어요. 다른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계속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하면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남들이 알아줄만한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모든 생활비는 부인이 이런저런 일을 통해서 감당해 왔고, 아직도 왕성하게 일을 하고 계시는 70대 중반의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크게 어려움없이 지내왔다는 것이다. 늘 정상적이지 않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크게 생활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싸움이나 갈등을 일으키기 싫어서 참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어쩌다 남편에게 불평불만 속상함 등등의 어떤 말이라도 건넬라 치면 그날부터 계속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6개월도 가고 1-2개월은 보통일 정도로 가족들을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고 단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보내다보니 어느덧 결혼생활 17년째를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남편이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무엇인가를 시작하겠다고, 모아둔 돈이 있으면 좀 달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그것을 따지고 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고 싸움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지치고 힘든 상태였다.
  


  정상적인 상담과정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서 이야기하는 상황이라 뭐라고 더 이상 묻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렇지만 이 분은 무엇인가를 조금 표현하고 도움받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서, 약간 핵심을 물었다. “이 상황에서 xx 님이 솔직한 마음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인지, 즉 이 상황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를 말씀해 보시겠어요?!”라고 말을 건넸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데 중요한 열쇠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르고, 남들에게 ‘자기의 원함’을 물어보고 또 물어보면서 대답이 오면 그건 아니라고 하는 등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태를 드러낸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경우에는, 조용히 그것부터 알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겠지만, 가능하면 솔직한 마음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덧붙였다. 이미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관계라서 그런지 비교적 있는 그대로의 말들이 나왔다. “전 솔직히 말하여, 우리 어머니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아버지의 무능함과 폭력 앞에서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살림을 일구고 살아온 어머니같은 삶이 좋아요. 난 더 이상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지도 않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싫어요. 물론 남편에게 돈을 줄 수는 없어요. 돈도 없구요. 어머니에게 얻어서까지 줄 수는 없잖아요. 난 어머니를 존경해요!” 나는 이 말에 대해서 응답했다. “아 그러니까, 남편의 이런 생활방식에 대해서 어머니처럼 인내하고 견디면서, 생활을 책임지고 성실하게 살아나간 방식이, 본인이 원하는 것이라는 말이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온 셈이구요.” “그래요!” 라고 바로 응답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왔고, 또 앞으로도 본인이 원하는 삶대로 살면 되는데, 왜 지금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건가요?” 라고 물었다. 이것은 그 자신스스로를 맞닦트리는 중요한 물음이기도하다. 사실 이런 물음은 스스로에게 물어야되는 자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물음을 건네면 처음에는 약간 당황할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죠. 제가 생각해도 난 어머니같은 삶을 사는 것이 원하는 것인데, 이렇게 남편 때문에 마음이 복딱거리고 괴롭고 말이죠. 사실 남편이 사업하는데 돈을 원하고 있지만, 제가 그것은 안된다고 말했어요. 남편은 또 다시 잠수상태가 들어갔고, 말을 안하죠. 옛날방식 그대로죠. 특별한 것은 없어요. 어머니같이 살겠다는 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글쎄요!”라고 말했다. 굳게 믿고 있었던 스스로의 엄마와 동일시된 삶의 방식에 대해서 한발 떨어져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참되게 안정되고 편하게 느껴지면, 그 방식은 진실에 가까운 것이 될 테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고 편치않으면 무엇인가 변화를 가져보고 싶은 마음의 움직임이 아닐까요?” 라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은 부인에게 무엇인가 모르는 깨달음을 안겨 준 모양이다. “그렇죠... 제가 진짜 엄마의 삶이 행복하고 좋아보였다면, 제 마음이 이렇게 괴롭고 힘들겠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자신의 본마음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사람은 이 침묵은 굉장한 도움이 된다. 자기의 진짜 마음을 만날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사실, 그녀는 엄마의 삶에 대하여 대단히 회의적이고 좋게 보는 것 만은 아니었다. 엄마는 늘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비난하였고 무시하였으며, 끊임없이 불평불만과 적개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전적으로 자신의 경제적인 활동을 해 왔다. 물론 객관적인 사실로서는 이 아버지는 무능하고 비난받을만 하였을지도 모른다. 이 분은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그 적개심이 내재된 강박증적인 태도 속에서 자라왔으며, 늘 불안하고 걱정되고 살얼음을 걷는 듯 아슬아슬하였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를 한번도 제대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의지할 수 없는 남편에 대하여 적개심만 가득 안은채로 독하게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볼 때는 현실적으로 이 어머니가 오랫동안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의지대상 일순위였고, 여러 측면에서 없으면 안되는 중요한 대상이었다. 그리고 외부에서는 한결같이 이 어머니를 대단하다고 칭찬하였으며, “너희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다 굶었을 것이다.” 라는 말을 예사로 들었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솔직히 드러낼 수가 있을까. 이렇게 대단하고 고생을 많이 한, 어머니에 대한 진짜 마음을 어떻게 의식이라도 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까지도 자신의 경제적 의존대상이며, 심리적 동일시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 부인은 남편과 같이 산 것이 아니라 엄마랑 같이 산 셈일 수도 있다. 남편을 의지하고 산 것이 아니라, 엄마를 오직 의지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참 마음이 복잡했겠어요.”라고 말하자, 봇물터지듯 억압되었던 감정들이 터져나왔다. 너무 고생해서 불쌍했다는 둥, 너무 미웠다는 둥, 너무 괴로웠다는 둥, 여자로서 너무 안됐다는 둥... 각양각색의 양가감정이 터져나왔다. 이런 감정 속에서 이 부인은 자식의 입장에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교정되어야 할 부분인지를 점검해 낼 수 없었으리라. 남편과의 모든 문제점과 현실을, 엄마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것이고, 이 남편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엄마의 삶대로 살면 될 것이라고, 즉, 자기의 주체적인 생각은 없었을 가능성이 많다. 남편과 어떻게 대화하고, 어떻게 대처하며,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현실대처 모델은 배우지를 못한 셈이다.  


  부모로부터 객관적으로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해 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가족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리 간단한 한쪽만의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가적인 감정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누구라도 분리시켜 한 가족을 바라보는 것이 생각만큼 단순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감정이 분리되지 않은 채로, 그 삶을 동일시해서 살아가고 싶으니, 그곳에는 많은 함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현실판단의 배경에는, 분리된 감정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말이다. 한발 떨어져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보는 것은, 외부상황들을 지혜롭게 판단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런 상황으로부터 감정이 한발 떨어져야 한다. 너무 붙어있으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듯, 아직 유아적으로 부모와 애착되어 있는 상태는 객관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기가 어렵다. 어른이라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은 나’가 되어야 하므로, 과거 가족으로부터 차차 분리되어 자유로워질 때, 그 모든 것으로부터 지혜가 싹트는 법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우리 자신이 대상으로부터 잘 분리되어 지혜로워지면, 상대를 내 기준으로 평가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 바라보게 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