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후의 행복?!(1)
고통 후의 행복?!(1)
우리가 사용하는 말 혹은 생각 중에 ‘행복’ ‘사랑’ 이라는 단어만큼 많이 떠오르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 진지하게 ‘과연 나는 행복한가!’ ‘난, 누구를 사랑하고 사는가! 무엇을 사랑하고 사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또한 그것만큼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말도 드물 것이다.
조지 베일런트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의 생애를 72년간 조사해 “행복의 조건;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보고서”란 연구서를 편찬했다고 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느 신부님의 묵상 글의 내용이었다.
“베일런트 교수는 이 연구에서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실험계층의 응답을 모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의외였습니다. 행복을 좌우한 것은 부나 학벌, 명예가 아니라 ‘따뜻한 인간관계’라고 사람들이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47세 무렵까지 형성한 인간관계가 그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능력이나 계급이 아니라 ‘따뜻한 인간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베일런트 교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연구서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쉽게 웬만한 것은 잘 믿지 않는 어떤 분은, 너무 흔한 성경말씀인 것 같지만, 참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핵심적인 계명 “하느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라는 말을 좀 깊이 묵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무엇이 혹은 누가 하느님인가!?’ 라는 생각부터 들었단다. 그냥 순수하게(!) 잘 받아들이는 분들을 보면 혹시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단다.
신앙심이 깊은 분들 중에는 ‘무슨... 소릴...!’ 혹은 좀 엉뚱하다고 말씀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주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무엇을 과연 하느님이라고 하는가?‘ 등의 고민부터 하였었다고 했다. 이런 류의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였던, 아집과 고정관념으로 ‘팽팽한 자아기능’을 가졌던 젊은 시절을 약간 지나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행복해지기는 참으로 쉽지 않겠구나. 사랑하지 않으면 행복은 손에 잡기가 결코 쉽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회고했다.
앞으로 좀 더 세월이 흘러 성숙해진다면, 자기의 존재가 사랑 그 자체로서 살다가, 육체적 삶의 막을 내렸으면 하는 상상을 하며 희망을 품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하는 ‘이것’은, 이 세상이 온통 하느님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본다. 조금의 의심도 가지지 않은 채, 무수한 은혜를 늘... 정말이지 늘... 베풀고 있는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존재, 일상에서 깔려있는 성스러운 것들에 감사하는 생활이 평화와 안정과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 되리라 생각되어 진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주님을 사랑하라’ 라는 말은,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마음씀을 의미하는데, 과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마주해야 하는가를 솔직하게 탐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일상생활에서 부지기수로 드러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고통을 피하고 대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속에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을 실천할 정도의 지혜와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 어디 그리 많겠는가! 관계 속에서 발생되는 고통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핵심적인 계명은 그야말로 지나가는 말 뿐이지, 진정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으리라 느껴진다. 자신의 깊은 고통과 마주하였던 많은 성인들 역시, 관계 속에서의 깨달음을 통해서 결국은 ‘자아기능의 초월’을 통한 ‘행복’이라는 보물을 손에 넣었던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수천년을 우리에게 지혜와 사랑을 알려준 대표적인 종교지도자들의 고통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한 어느 분의 간단한 글을 본적이 있다.
“부처님은(고타마 싯다르타)는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이모가 그를 키웠습니다. 싯다르타는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자책감을 강하게 느꼈을 겁니다. 어쩌면 인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숱하게 엄마를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경전에는 그가 어릴 적부터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남달리 깊은 눈을 가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유년기의 싯다르타, 그는 엄마에 대한 상실감을 가슴에 안고 자랐던 겁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바로는,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목수였던 요셉은 그의 친아버지가 아니죠. 당시 유대인의 관습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여자는 돌로 때려죽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살았던 나사렛의 동네사람들 누구도 예수는 동정녀의 아들 혹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설교도 배척하였으며, 특히 그가 사는 동네에서는 더욱 더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년기의 예수, 젊은시절의 예수... 그가 과연 얼마나 많은 번뇌 속에 있었을까요”
“공자의 아버지 공흘은 노나라 하급 무관이었습니다. 그에겐 아내와 자식이 있었죠. 딸은 많았으나 아들은 하나였습니다. 그 아들이 너무 부실했다고 합니다. 혼란한 춘추전국 시대에 대가 끊길까봐 우려하던 70세의 공흘은 16세 처녀 안징재를 맞아들였죠. 나이 차이만 54세였습니다. 그리고 공자를 낳았습니다. 공자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스물네 살 때는 홀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늘 효를 강조한 공자였지만 정작 자신은 뼈에 사무치는 아쉬움을 안고 자랐던 겁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는 유복자였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여섯 살 때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친을 잃은 무함마드는 할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여덟 살 때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숙부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상인이었던 숙부를 따라 험난한 사막을 횡단하곤 했습니다. 무함마드의 유년기는 힘겨움의 연속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