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이야기

'저항'의 치료적 의미(1)

낙산1길 2014. 8. 26. 15:44

'저항'의 치료적 의미(1)



  상담 및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내담자의 주호소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 ‘치료동맹’이다. 즉,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의 건강한 부분 혹은 간절한 의지와 노력, 진실성과 투신하는 자세 등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하여, 내담자의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는 상호 협조적 체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히 장기적 상담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바로 ‘저항’이다.

  이러한 저항을 아예 일어나지 않게끔 방어하도록 하는 치료적 방법(지지치료적 접근)도 있고, 저항을 오히려 치료적으로 잘 이용하는 방법(통찰치료적 접근)도 있다. 그 둘의 방법은, 여러 가지 상담의 조건에 따라서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서 활용도가 틀려질 것이다.
  


  저항은 내담자의 무의식적인 억압된 부정적 감정(특히, 적개심)이 상담자 혹은 상담장면 자체에 투사되어, 상담과정에 대한 반항, 조건없는 거부, 지금까지의 동맹 무너뜨리기, 결석과 지각 등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난다.

  개인상담에서는 1:1의 장면이라 상담자에게 드러나기 쉽지만, 집단상담의 장면에서는 리더에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구성원들에게도 다양하게 표출된다. 과거 대상관계에서 미해결된 감정이 현재의 대상에게 전이되는 감정이므로, 일종의 전이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적인 전이감정에 의한 하나의 현상이 대체로 저항이 되기 쉽다.

  
  상담장면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저항감은 자주 발생한다. 대체로 저항감은 갈등관계를 야기시키기 쉬우나, 저항이 치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한번쯤 깊이 고려해 본다면, 오히려 ‘저항’자체가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인격성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부모-자식, 부부, 조직공동체에서의 친근한 관계, 오랫동안 관계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 등에서는 필연적으로 ‘저항’의 심리가 작용한다고 볼 때, 좀 더 의미있게 ‘저항’의 성격을 재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즉, 저항의 치료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자녀(배우자)의 공격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혹은 상대방의 적개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를 응용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저항을 치료적으로 다루어나가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현실적인 대상(상담장면에서는, 상담자 혹은 집단구성원)에 대한 감정이 부정적으로 일어났을 때 올라오는 거부감 저항감 등이,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만한 ‘비례적인’ 감정일 경우이다. 둘째는, 대상에 대한 저항감이, 다른 사람(상담장면에서는, 상담자 혹은 타 집단구성원들)이 느낄 때는 특수하게 보이는 ‘비례적이지’ 않는 감정일 경우이다.
  


  물론 이 경우에, 대상에 대한 정서가 비례적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있어서, 과연 진실성과 객관성이 얼마만큼 있느냐 하는 문제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로부터 확인이 필요하다면, 그 확인은 건강한 자아기능을 가진 대상들과 의논하면서, 현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판단이 요구될 것이다. 내 편을 들어줄 만한 대상에게만 논의하는 것은, 대체로 끼리끼리 모이는 관성이 있으므로 합리적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좀 더 전문적이고 객관성이 있는 ‘건강한 자아기능’의 소유자들과 논의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이러한 확인 후, 비례여부가 구분되고 나면, 각각의 상황에 따라 치료적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첫째, 대상에게 느끼는 저항감이 현실적으로 ‘비례적’일 경우이다.
  
  ‘저항’이 비례적인 것이라면, 그러한 대상에게 잘 대처하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대처’라는 것은, 그들과 ‘싸우거나’ ‘무조건 주장하거나’ ‘뜻을 반드시 꺽어야 해.’ 라는 의미가 아니다. 건강하게 대처하게 되면, 그러한 저항 아래에 숨어있는 심리적 현상들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하여 서로가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예컨대, 자녀의 저항이 지극히 비례적이라는 것을 부모가 알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러한 저항은 당연히 이해되고 공감되어지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수그러든다. 그 아이는 자신의 존재 혹은 능력이나 가치 등에 대한 억눌림을 당했기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당연한 저항을 하는 것이므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후 자녀의 생각과 감정들을 차근차근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될 때, 부모는 자녀에게 저항을 유발시키는 부모자신의 태도나 말, 감정 등에 대하여 새롭게 깨닫는 계기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은 매우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거꾸로, 우리 자신이 대상에 대하여 비례적인 저항감이 생길 경우에는 건강한 대처가 필요하다. 예컨대, “당신의 이러이러한 부분이, 나에게 이러이러한 기분이 들게 했어요.”라는 촛대와 촛불의 ‘나 전달법’이 기본 태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전달법’은 상대방을 바꾸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해 냄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알아주어’, 마음을 편히 가지자는 것이 목적이 되면 좋은 것이다.

  이 말은, 전달하지 않아도 혹은 대상의 상황에 따라 전달할 필요가 없어도, 스스로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이라면, 그것자체로서도 좋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한은(그것이 비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즉 대상에 대한 저항감을 품은 채로 어떤 말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존재자체에 대한 박탈과 경시감으로 인하여 쉽게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상대방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 혹은 전달하지 않은 채 감정을 어떻게 스스로 조절할 것인가를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된다.


- 다음 회기에 계속됩니다.-